영화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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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윤종원
  • 승인 2006.12.0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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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속에 담아낸 역설의 미학 돋보여

박찬욱 감독의 신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제작 모호필름)는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장르의 가벼운 외피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박 감독은 영화에 스타 정지훈(비)과 임수정이라는 당의정을 입혀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오롯이 뱉어낸다.

영화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군(임수정)과 일순(정지훈)의 핑크빛 로맨스가 축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명제가 숨어 있다.

엉뚱한 상상과 공상이 가득한 신세계 정신병원. 이곳에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기가 사이보그라고 믿는 소녀 영군이 들어온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은 새로 온 환자 영군에게 관심을 갖는다.

영군은 사이보그이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 안된다는 믿는다. 이 때문에 점점 야위어 가는 영군에게 일순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영군에게 밥 먹이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순은 같은 정신병원 환자 왕곱단(박준면)이 개발한 "수면 비행법"을 훔쳐 영군과 영군의 할머니를 만나게 해주고, 영군의 동정심을 훔쳐 그녀의 정신세계를 자유롭게 해준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역설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은 사이보그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화 속 칠거지악은 △동정심 갖기 △설레는 마음 갖기 △쓸데없는 공상하기 △죄책감 갖기 △망설이기 △슬픔에 잠기기 △감사하는 마음 갖기 등이다.

이는 인간이면 누구가 가져야 할 마음이지만 영화는 이를 칠거지악으로 표현, 인간적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현대사회를 풍자한다.

영군은 "하얀맨"으로 통칭하는 의사ㆍ간호사 등을 응징하는데 감독은 이를 통해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을 사회 낙오자로 만드는 현실사회의 기득권층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박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카드를 들이민다. 영화 속 영군과 일순의 대사로 반복되는 영군 할머니의 말인 "죽긴 왜 죽어, 젊은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야지" 등의 대사는 "그래도 이런 현실 속에서 발을 붙이고 살자"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할머니가 영군에게 얘기해주고 싶어하는 "삶의 목적"은 영화 마지막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정신병원에 오게 된 영군과 일순이 전동(電動) 칫솔을 함께 사용하는 장면은 가족에게 배신당했지만 그래도 가족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하는 듯하다.

영화 속 전동 칫솔은 가족 해체의 상징이자 가족 복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순은 대사 속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가족이 함께 쓰던 전동 칫솔를 갖고 갔다"는 말은 가족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런 메시지 없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정지훈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별로 없고, 임수정은 자신의 이름 값을 했다.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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