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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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그해 여름
  • 윤종원
  • 승인 2006.1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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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그해 여름", 평생에선 찰나였으나 영원한 그리움을 품게 하는 사랑이 싹텄다.

이병헌과 수애의 멜로 영화 "그해 여름"(감독 조근식, 제작 KM컬쳐)은 그리움으로 가슴 한켠에 간직한 소중한 추억을 넘어 사랑이 삶 자체를 이룬 두 남녀의 "그 한때"를 담아낸다. 남녀의 사랑이 싹트는 시골 풍경은 정겹고, 둘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과정은 흐뭇하며,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할 때 관객은 함께 아프다.

이병헌과 수애의 진가가 새삼 확인되는 작품. 이병헌은 그가 소화해냈던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역시 멜로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그 자신에게조차 일깨워준다. 스펙트럼이 넓은 그의 캐릭터 소화 능력은 관객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애는 스크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여배우로 다시 한번 평가받게 됐다. "가족" "나의 결혼 원정기"에 이어 처음으로 본격적인 멜로 영화에 출연한 수애는 이 영화가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갖게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전작 "품행제로"에서 과거를 배경으로 코미디를 풀어냈던 조근식 감독은 "그해 여름"으로 복고 색채를 아름답게 재현했다.

작년 멜로 영화 최고 흥행작 "너는 내 운명"과 올해 흥행 성공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낙착 큰 감정의 진폭으로 몰입을 유도했던 것과 달리 "그해 여름"은 빙그레 미소지으면서도 애잔하다. 연기 잘하는 어여쁜 배우가 시골의 어여쁜 풍광을 배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감정 고조를 향해 간다.

감독과 배우가 숱한 토론 끝에 만들어낸 장면들과 그 장면의 리얼리티 또한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배우들은 섬세한 터치로 자칫 상투적일 수 있는 화면을 깨끗한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또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정감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했던 1969년,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시대의 아픔으로 되새김질할 수 있게 한 것도 멜로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도.

그러나 신파적 멜로를 경계해 결코 공급 과잉을 하지 않으려 애쓴 까닭에 갑작스레 호흡을 멈춘 듯한 장면 전환은 때론 아쉽다.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한 방송 프로그램 작가가 매력적인 독신남 윤석영(이병헌 분) 교수를 찾는다. 병 때문에 학교도 그만둔 윤 교수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누군가를 부탁한다.

대학 시절 세력가의 아들 석영은 학교에서 겉도는 인물이었다. 삼선개헌 반대 투쟁으로 연일 휴교령이 내려지는 학교와 치열한 정치적 번민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주변인물이 돼간다. 그를 유일하게 친구로 대해주는 균수(오달수)를 따라 수내리라는 시골 마을로 농촌봉사활동을 간다.

그곳에서 석영은 "빨갱이의 딸" 정인(수애)을 만난다. 정인은 글을 못 읽는 동네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 야한 소설을 읽어주며 얼굴이 빨개지고, 편백나무 잎사귀로 편지지를 만들며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맑고 순수한 여자.

석영은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정인 역시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석영이 싫지 않다. 몸담고 있는 곳에서 겉돌았던 석영과 정인은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읍내 장에서 로이 클락의 "예스터데이 웬 아이 워스 영(Yesterday When I Was Young)"을 눈을 감은 채 들으며 석영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정인과 정인을 위해 두 사람만의 영화관 객석을 만드는 석영.

그러나 세력가 아들과 빨갱이 딸의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온 시대의 격랑에 맞부딪히며 거센 풍파를 겪는다. 간첩죄를 뒤집어쓰게 된 석영은 평생을 회한 속에 살아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하며, 정인은 그런 석영을 감싸 안는다.

환하게 미소지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볼 수 있는 멜로 영화다.

3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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