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수준은 상용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각종 규제와 법규가 발목
드론이 의약품을 비롯한 의료물품을 운반하고, 휴머노이드가 냄새로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섰다.
지난 2018년 창업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1호 연구소기업 ‘나르마’는 수직 이착륙 기술인 ‘틸트로터’ 기술을 바탕으로 의약품 등의 배송용 드론을 만들고 있다. 여러 차례의 국내·외 실증을 거쳐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드론 배송을 실현했지만 아직 규제와 법의 벽에 부딪혀 제한적인 상용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부산대학교 나노에너지공학과 교수이자 휴머노이드 후각디스플레이센터장인 오진우 교수는 후각수용체인 M13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각종 질병 조기진단 및 예후 측정 기술을 영상 및 검체 진단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호기, 즉 냄새가 아직 검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첨단기술 수준을 사회가 따라오지 못하는 갭이 이들 디지털헬스케어 선도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인류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이들은 쉬지않고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KHF 2024 부대행사로 ‘2024 디지털헬스케어 서밋’을 개최, 우리 사회의 디지털헬스케어 인식 향상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서 양문술 병협 미래헬스케어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디지털로 연결되는 초연결 융합의 시대에 디지털 역량이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가치로 떠오르고 있으며 디지털헬스케어 분야는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 필드에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며 “현재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치료기기와 헬스케어 서비스 등 K-헬스케어가 대한민국 대표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정부는 디지털헬스케어를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양 위원장은 이어 “디지털 기술 개발과 서비스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인간에 대한 교육과 정보 전달 등 수용성 향상도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의 인식에 대한 혁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병협은 이번 디지털헬스케어 서밋에 국산 드론과 미래 로봇인 휴머노이드, 그것도 후각을 활용한 진단기술, 미지의 세계인 우주 헬스케어, 그리고 디지털 트윈 기술까지, 가까운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 우리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질 혁신에 대한 콘텐츠를 준비했다”며 “오늘 이 시간이 디지털헬스케어의 전망과 미래 의료산업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나르마 권기정 대표는 ‘Emerging Technology : Commercialization of Medical Drone Delivery’에서 “혁신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일반적인 첫 반응은 ‘들어본 적이 없다’에서 ‘들어는 봤다’, ‘누가 쓰겠어?’, ‘써봤는데 꽤 괜찮더라’, ‘이거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지?’, 그 다음은 혁신을 논의하는 단계로 간다”며 “드론으로 의약품 관련 물품을 배송하는 일 역시 아직은 혁신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머잖아 스마트폰처럼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자 서비스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드론이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0년대로, 항공기의 역사와 거의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이트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만들었을 때 주변에서는 아무도 비행기를 타고 대륙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드론 배송 역시 그같은 과도기에 있음을 강조했다.
권기정 대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드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게임기가 있었다는 것. 최초의 드론은 군용이었지만 게임기 회사인 일본 닌텐도의 자이로스코프를 탑재한 눈처크라는 게임 조종기에 착안해 중국의 DJI가 드론을 만든 것이 지금처럼 대중화의 기폭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제는 드론에 카메라를 탑재해 사진과 영상촬영을 하고 농약도 치고, 대형 구조물 관리, 다리 관리, 풍력터빈 관찰 및 정비 등에 활용하게 됐다는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드론 시장은 농약살포드론이고 국제적으로는 군용시장의 비중이 크지만 배송 혹은 사람을 수송할 수 있는 분야로 점차 활용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나르마는 안정적으로 떠있는 것은 잘 하지만 속도가 늦어 배송에 한계가 있는 멀티포트 드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동 시 두 개의 프로펠러를 앞으로 기울여 속도를 낼 수 있는 틸트로터 드론을 개발해 의약품은 물론 의료장비까지 신속하게 배송 가능함을 실증해 보였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드론을 띄울 수 없는 등 각종 규제의 벽에 막혀 상용화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기정 대표는 “서비스 플랫폼기업은 돈을 많이 벌지만 하드웨어 업체는 아직 돈을 못 벌고 있다”며 “향후 드론의 미래는 배송이 될 것이며 그 때 가서는 하드웨어 업체에도 볕이 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드론시장은 현재 북미가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2030년이면 아시아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는 현재 농약살포 드론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처럼 섬이 많은 나라의 경우 섬과 섬 사이의 배송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드론 배송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와 법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 외에 현재까지 높은 하드웨어 제작비용도 걸림돌이다. 드론의 수명과 제작비를 감안할 때 현재 10km의 거리를 드론으로 배송하는 데 최하 50달러 이상이 소요되지만 10달러 이하로 맞춰야 승산이 있다는 것.
권기정 대표는 “아직 드론 배송은 비용이나 보험료 등을 감안할 때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기기당 사용횟수를 늘리고 제작비용을 줄이면 경쟁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현재 구글 자회사인 윙(WING)은 미국에서 의약품 배송 사업을 하고 있다. 드론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버지니아공대 옆에서 실증 중이다. 이 드론은 땅에 착륙하지 않고 줄을 내려 물건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의약품 외에 음식 배송도 함께 하고 있다.
또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집라인(Zipline)은 고정익 드론을 이용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의약품 배송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중단됐다. 낙하산을 이용한 배송 방식으로 인해 의약품 파손·분실 등의 배송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월마트와 함께 일반 상용품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술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드론 배송 회사 중 가치가 가장 높은 회사이기도 하다. 이 회사를 ‘낮은 기술과 높은 비즈니스’ 회사라고도 부른다는 것. 12억달러의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회사라는 설명이다.
에버드론(Everdrone)이란 스웨덴 회사는 자동심장제세동기(AED) 긴급배송 드론으로 심장마비 환자를 살렸으며 중국 순펑그룹도 의약품을 배송하고, UPS도 처방전과 의약품을 배송하고 있다. 일본은 낙도 진료소에 드론으로 약 배송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DHL도 드론으로 의약품 배송을 많이 하는 회사다.
다만 우리나라는 약사법에 따라 약 배송은 못하고 혈액과 해독제 배송만 가능한 실정이다.
권기정 대표는 “나르마는 항공우주연구소 창업기업으로 좋은 드론을 만들었지만 잘 안 팔린다”며 “드럼세탁기가 처음 나왔을 때 첫 1년간 한 대도 못 팔았지만 현재 드럼세탁기를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듯, 드론도 브랜드화를 못 시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나르마에는 다양한 제품군이 있으나 그 가운데 심장마비 환자를 3분 내에 살릴 수 있는 AF100-AED와 해독제를 긴급하게 배송하는 AF200-AMBUANCE가 의료분야 대표 드론이다. 또 戰時에 혈액이나 의약품 배송을 위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콜드체인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혈액배송 실증사업을 통해 약 110회의 혈액배송에 성공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어서 사업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밖에 대전 갑천변을 따라 응급환자에게 응급물품을 가져다주는 사업도 했었다.
최근 한국도로공사 건설현장에 심장제세동기 드론 판매를 했다. 상용으로 배송용 드론 설치가 세계 최초로 이뤄진 것이다. 또 의외로 심장마비 환자 발생률이 높은 골프장의 경우 골프장 업주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내방객이 기부금을 내는 형태로 사업을 구상 중이다.
권기정 대표는 “드론 배송은 관련 규제가 많아 힘이 든다. 일상생활에 들어오려면 어려움이 많다. 항공안전법, 약사법과 의약품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개인정보보호법,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등의 규제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며 “의약품을 배송하려면 배송박스까지도 인증을 받아야 하며, 의약품 추적 및 인증 역시 보장돼야 해 기술적 해결책도 필요한 상황인 만큼 실용화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앞으로 국민과 함께 이 난제를 풀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야외에서, 즉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생존율이 5% 이하지만 드론으로 AED가 배송된다면 5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미국 연구결과가 있다”며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앞으로도 이 사업을 열심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휴머노이드 후각 디스플레이 기술 기반 질병진단’ 주제발표를 한 오진우 부산대학교 나노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냄새의 경우 주관적이어서 이를 객관화하고 표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개발된 휴머노이드의 기능은 모양으로 사물을 구분하기 때문에 독이 든 사과나 인공 사과를 구분하지 못하며, 결국 AI가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보다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고 안전하다는 것.
오 교수는 “비대면 의료의 핵심은 냄새”라며 “사람은 600만개, 개는 3억개의 후각수용체, 즉 냄새 센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인지할 수 있는 소재가 개발된다면 유해가스 감지, 폭발물, 마약, 신선도 검사, 화재 조기 진단 등에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개발의 마지막 키포인트 역시 후각센싱이며, 신약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개는 K9(탐지견)이 마약, 폭발물, 지뢰 등은 물론 질병 진단에도 활용되는 사례가 발표된 바 있다.
오진우 교수는 냄새로 폐암을 진단하는 연구에 먼저 착수했다. 폐암은 호흡기와 관련이 있으니 직관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의료미충족 분야여서 생존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다는 것.
각종 질병 진단을 위해 MRI 촬영이나 조직검사가 필요한데, 접근성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중간 단계 진단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고, 냄새를 통한 진단기술 개발에 나섰다.
오진우 교수는 “질병에 걸리면 체내 여러 가지 물질이 바뀌며 폐암의 경우 수십 종 물질의 농도가 바뀌지만 그 중 9가지가 유의미하게 바뀐다. 이를 분석해 개코를 모방한 기술로 진단에 활용했다”며 “공학적으로 대량생산 가능한 소재가 자가조립, 자가진화, 자가복제 된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며 후각수용체 M13박테리오파지가 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이용해 호기 기반 비침습 체외진단기기를 만들었고 폐암환자의 패턴을 이용해 CT나 MRI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진단이 가능했다는 것.
정상인과 폐암환자의 패턴을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인체유래물인 호기 가스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전체 패턴을 토대로 딥러닝을 하면 환자와 정상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설명이다.
호기가스를 이용한 폐암 진단의 경우 특이도 78.4%, 민감도 83.2%를 기록했지만 법적으로 호기는 아직 검체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호기를 검체화시키는 기술을 마련 중이며 –4℃와 –20℃에서 보관하며 적정 온도를 찾고 있는 중이다.
휴머노이드 후각디스플레이센터는 호기도 검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검체보관 GMP 시설도 마련 중이며 호흡기내과 외에 치과,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등과도 협업하고 있다.
현재 기술로 바나나 숙성도 95.0%, 복숭아 신선도 92.9%의 정확도를 보였고 사과나 김치 숙성도 판단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단가 문제로 인해 연구는 가능한데 상용화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 외에 폐플라스틱 재활용이나 담배의 관능평가 역시 대체가 가능한 영역이다. 이를 통해 사람의 건강 보호는 물론 객관적인 평가도 가능해질 것이다. 냄새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환경, 의료, 에너지, 식품, 기타 니코틴 센싱과 마약 검출, 과학수사 부패검사 등 무궁무진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오진우 교수는 “후각디스플레이기술은 안전과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은 물론 높은 시장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2030년 기준 537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침이나 혈액, 소변, 혈청 등의 검체 외에 눈의 방수, 척수액 등을 이용한 실험 결과 역시 좋았다. 코나 혀는 다양한 물질 감지가 가능하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방수를 녹내장 환자 진단에 활용할 경우 90% 이상의 진단이 가능했지만 침습적인 진단이라는 한계가 있다. 유방암은 민감도 91.9% 특이도 94.6%의 결과를 보였고, 위암도 인체유래물인 위액이나 혈장 기반 진단을 통해 민감도 78.79%, 특이도 81.48%를 기록했다.
오진우 교수는 “향후 10년 후각의 디지털화 실현을 통해 2034 K-디지털헬스케어를 선도하겠다”며 “병원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1만5천명 이상 데이터를 확보해 국민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양문술 위원장은 세포 단계에서 진단이 가능하다면 영상에 아무 것도 없어 지나치게 일찍 진단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오진우 교수는 “세포단계에서 미리 진단이 가능하다”며 “치매와 알츠하이머 진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다만 “정상인 상태에서 진단을 해야 조기진단이고,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조기진단이 아니다”며 “결국 예방보다는 예후 쪽으로 집중하는 게 현재 이 기술의 방향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