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미치고 싶을 때"
상태바
<새 영화> "미치고 싶을 때"
  • 윤종원
  • 승인 2004.11.0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터키계죠? 저랑 결혼 좀 해줄래요?"

남녀가 처음 만난 곳은 병원이다. 남자는 약에 취해 교통사고를 냈고 여자는 보수적인 가족들이 싫어 손목을 그었다.

먼저 말을 건 쪽은 여자. 다짜고짜 터키 혈통이냐고 물으며 결혼해달라는 여자에게 남자는 "미친 계집"이라는 쌍소리를 내뱉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미치고 싶을때"(원제 Gegen Die Wand, 12일 개봉)는 사실 그렇게 달콤하지 못한 영화다. 계약 결혼으로 만나 결국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이 두 남녀는 숨을 헐떡이며 어딘가로 쉼없이 달려가고 있는 듯, 역동적이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둘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도 금방 폭발해버릴 듯 아슬아슬한 것. 잔인할 정도로 치열한, 하지만 사랑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낭만적인, 그런 애정영화다.

몇 해 전 아내를 잃은 남자 차히트(비롤 위넬)는 술에 절어 살고 있다. 콘서트장에서 일하지만 직업은 가수가 아닌 청소부. 약에 취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날 낸차사고도 자살에 가까워보인다. 남자에게 사랑은 회전목마 같은 것이다. 돈을 넣어야 돌아가고 그것도 계속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여자 시벨(시벨 케킬리)의 삶도 다를 것은 없다. 그녀의 집안은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터키계 이민자 가족. 남자의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오빠의 주먹은 그녀의 코뼈를 부러뜨렸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은 넘쳐나지만 그럴수록 집안의 수치로 내몰릴 뿐이다.

그녀가 "계약결혼"을 제안한 것은 가족의 속박에서 "합법적"으로 도망치기 위해서다. "요리, 청소 뭐든 해줄 테니 결혼식만 올리게 해달라". 시벨의 얘기다. 게다가 자살하겠다고 위협을 하기까지 하니 차히트는 시벨의 엉뚱한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부모님의 승낙을 얻고 결국 식을 올리게되는 두 사람. 남남처럼 지내지만 여자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 집만큼이나 차히트의 삶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싹트기 시작한 것. 한동안 여러 남자들 사이를 떠돌던 시벨도 자신이 차히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진짜 부부가 된 두 사람. 하지만 "미치고 싶을" 정도로 뜨거운 이들의 사랑에는 뭔가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마리아"(김기덕)의 감독상 수상으로 떠들썩했지만 사실 올해 2월열렸던 베를린 영화제를 빛냈던 것은 이 영화 "미치고 싶을 때"였다. 파티 아킨 감독은 이 영화로 31살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독일 영화로는 18년만에 최고상인 황금 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감독은 화려한 테크닉을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가슴속을 깊이 파고드는 차분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가 넘쳐보이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덕이 크다. 특히 남자주인공 비롤 위넬의 눈빛은 영화가 끝난 뒤까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펑크 락에서 집시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국적인 음악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1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