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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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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귀여워"
  • 윤종원
  • 승인 2004.11.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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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귀여워". 도발성을 아래로 숨기고 한껏 내숭을 떠는 이 영화는 사실은 김기덕 감독의 시선보다 더 서늘하다. 윤리관, 가치관, 희망이 무너진 사람들의 뒤엉킴을 보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무거운 이야기를 판타지처럼 포장해 킬킬 웃게 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신예 김수현 감독의 공들인 손길은 아이들의 크레파스 그림과 같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김 감독은 고통스러운 세상을 농담처럼 표현한 자신의 이야기가, 어설픈 등장인물들이, "귀엽게" 보이기를 바랬다. "어쩔 것이냐 어차피 비루한 인생, 돌파구가 없다면 농담이라도 하자."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세상이 슬퍼보여" 혹은 "이 한심한 세상에~"등의 대사로 틈틈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두 축을 갖고 있다. 백치미와 모성애로 조합된 순이(예지원 분)와 저마다 배 다른 아들 셋을 둔 대책없는 박수무당 수로(장선우 분). 둘의 캐릭터는 참으로 황당하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현실이라면 아예 헤벌레 웃어나 보자는 듯. 실제로 화면 가득 클로즈 업 되는 예지원, 장선우의 천진무구한 "배시시" 웃음은 이 영화의 출발이자 끝이다.

수로는 둘째 아들 개코(선우)가 효도 차원에서 "주워 온" 여자 순이를 처음 대면한 순간 마치 아기 귀신이 씌인 듯 딸 뻘인 순이에게 흑심을 품으며 노골적으로 친밀감을 표시한다. 동시에 순이를 흠모하는 아들들을 "호로 자식"이라 몰아붙인다. 아들들 역시 아버지와 "동서지간"이 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순이를 넘본다.

순이는 "난 세상 남자들이 다 날 좋아해주면 좋겠어"라고 내뱉으며, 누구나의 "욕구"를 해소해준다. 마치 우주처럼 넓은 자궁으로 불쌍한 어린 양들을 품겠다는 듯. 그러나 이러한 순이의 머리 위로는 신디 로퍼의 "girl just wanna have fun"이 울려퍼진다. 마치 관객이 조금이라도 진지해질봐 감독이 "아니야, 순이는 헤픈 여자야"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영화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애용한다. 수로의 집은 어둡고 음침한 토굴 같고, 화면은 마약을 먹은 듯 일렁거린다. 점집에서 샹송이 울려퍼지고, 철거촌의 "조숙한"어린 아이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발칙하다. 밑바닥 인생들의 자포자기한 체념의 정서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섭게 삶을 파고드는 것.

뭐시기(정재영 분)가 쉽게 사람들을 죽이고, 개코가 홧김에 순이를 사창가에 팔아넘겨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악순환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분노와 슬픔은 세상의 움직임에 하등의 파동도 일으키지 못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한 황학동 삼일아파트와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철거해야하는 철거깡패의 대결구도. 영화는 철거 직전의 황학동과 청계고가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며, 치열할 것 같지만 사실은 큰 그림에서 보면 작은 소란일 뿐인 밑바닥 인생들의 풍경을 그렸다. 발전하는 서울특별시에서 결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인생들. 그러니 한판 걸쭉한 농담이나 할밖에.

김 감독은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의 허를 찌른다. 영화 내내 희한한 구경을 시켜주던 그가 끝에 가서 다시 한번 방점을 찍는다. 지금껏 헤픈 줄 알았던 순이가 사실은 처녀였을 지도 모른다는 암시, "사기꾼"으로만 알고 있던 수로가 사실은 열반 했을 지도 모른다는 설정. 그것이야말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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