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요? 성확정수술 허브를 태국에서 한국으로 옮기는 것”
상태바
“꿈이요? 성확정수술 허브를 태국에서 한국으로 옮기는 것”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2.12.19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교수, 벨기에 겐트대학교병원에서 연수 마치고 돌아와
성소수자 위한 편안한 진료 환경 조성…최고의 ‘LGBTQ+’ 센터 구축 목표
성확정수술, 성형외과·정신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감염내과 다학제 특징

일반인들의 인식에 성형외과는 ‘사람을 살리는 과’라기 보다는 ‘미용과 아름다움을 위한 과’로 언급되기 일쑤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기존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다시 태어나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도 ‘사람을 살리는 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 성확정수술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성형외과 의사가 있다.

그것도 개원가가 아닌 종합병원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의료 환경 갖춘 강동성심병원 LGBTQ+

외국에 비해 열악한 성소수자 의료 환경 극복 노력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교수. ⓒ병원신문.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교수. ⓒ병원신문.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개원가, 심지어 대학병원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성확정수술을 주로 하는 국내에 얼마 없는 성형외과 의사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트랜스여성 환자의 정자를 채취하고 동결해 생식능력을 보존하면서 성확정수술까지 동시에 성공해 주목받았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인 김결희 교수는 강동성심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팔로우를 하다가 개원가에 잠시 몸을 담았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가슴 재건 수술을 경험한 후 성확정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 김결희 교수인데, 당시 국내 성소수자들이 태국 등 외국에서 수술을 받는 모습을 보고 차라리 국내에서 더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렇게 김결희 교수는 개원가에서 강동성심병원으로 다시 적을 옮겼고, 본격적으로 성소수자를 위한 진료를 시작했다.

김결희 교수는 “성확정수술은 단지 수술 자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적 케어가 중요하고, 고난이도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입원 시설 등도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종합병원·대학병원급 환경에서 성확정수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지만, 난이도가 높은 성확정수술에 대한 제대로 된 수련을 받고 싶었던 김결희 교수는 최근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확정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는 벨기에 겐트대학교병원으로 펠로우십을 떠났다.

겐트대병원은 다양한 케이스의 성확정수술 및 관련 학술 연구가 활발한 곳으로, 국내에서 자주 보기 힘든 케이스의 수술을 단 3개월 만에 여럿 경험하고 온 최초의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가 김결희 교수다.

김 교수는 “워낙 많은 성확정수술을 하는 병원이다 보니까 진료환경이 국내와 많이 다르다”며 “굉장히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술이 시행되는 점이 인상 깊었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한국과 달리 보험을 적용받아 수술비가 매우 저렴해 환자 부담이 적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의 적지 않은 국가가 현재 성확정수술에 보험을 적용한다.

이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우울증을 앓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건강의학과적 질병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들에게 성확정수술을 시행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유럽 국가들이 보험을 적용한 이유다.

김 교수는 “유럽도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인 성확정수술에만 보험을 적용하고, 연관된 다른 시술들에는 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며 “병원 내에 남성과 여성이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성중립 화장실, 사회적으로 위축된 성소수자와 보호자 및 가족들을 위해 의학적 진료 외에도 정서적지지를 보내는 분위기가 익숙한 병원 환경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다.

즉, 성소수자들이 병원을 찾는 순간부터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시스템들이 작동하는 환경이 부러웠고 국내에도 점차적으로 적용해야 할 부분이라고 느꼈던 김 교수인 것.

이에 김 교수는 강동성심병원 내에 ‘엘지비티큐플러스(LGBTQ+) 센터’를 만들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진료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LGBTQ+ 센터에서는 의료 관련 정보 외에도 수술 후 관리법, 법적으로 성별을 수정하기 위한 서류 안내문, 성소수자 관련 책자 및 모임 소개 등을 동시에 제공하며 성중립 화장실도 설치됐다.

LGBTQ란 성소수자인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의 앞글자를 딴 합성어이며 여기에 플러스(+)를 붙여 성소수자 그 이상을 뜻하는 공간이 바로 강동성심병원 LGBTQ+ 센터다.

김 교수는 “성소수자와 건강권이라는 주제로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인문학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의대생 83명 중 단 6명만 LGBTQ의 의미를 알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며 “성확정수술을 하는 병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LGBTQ+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모든 성소수자들이 차별 없이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강동성심병원에는 각과 마다 성소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 즉, 엘라이 닥터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자의 진료과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다학제 진료를 시행 중인데 성별불편감 진단을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호르몬 치료를 위한 내분비내과, 가슴 절제술 및 자궁 절세술이 필요할 경우 산부인과, 성대 수술을 위한 이비인후과, 성매개감염병 및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 진료를 위한 감염내과 등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들 중 절반가량은 우울과 불안 등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을 기본적으로 함께 겪고 있어 성확정수술 이전부터 수술 성공 이후에도 꾸준한 심리 상담 및 케어에 소홀하지 않은 게 강동성심병원 LGBTQ+의 특징 중 하나다.
 

성소수자 관련 의료, 전 세계적으로 시장성 매우 커

국내 성소수자 의료 정착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

성소수자를 위한 국내 의료 환경은 아직 열악하다.

법적 성별 탓에 그 흔한 건강검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고, 의료계 내에 성소수자 관련 진료 가이드라인도 명확히 갖춰진 게 없다.

대부분의 정보를 독학으로 습득한 김결희 교수는 자신이 몸소 겪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를 만들고 다양한 활동 및 연구를 계획 중이다.

현재 연구회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산부인과 전문의, 성형외과 전문의, 의학교육 전문가, 법조계 관계자 등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성소수자 의료를 단순히 감성적으로만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및 성소수자 의료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아직 동호회 수준에 불과한 연구회이지만, 향후 성소수자 관련 의료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와 통계 등을 습득하고 분석·연구하고 싶다”며 “다양한 정책적 제안, 급여화 문제, 사회적 분위기 조성 등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언했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설명하고 있는 김결희 교수. ⓒ병원신문.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설명하고 있는 김결희 교수. ⓒ병원신문.

성확정수술 등 성소수자들을 위한 진료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미래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큰, 전 세계적으로 시장성이 매우 큰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성확정수술을 시작으로 각종 성형외과 수술과 검진 등 많은 진료가 파생돼 연달아 이어지며, 특히 성소수자 환자들은 한번 믿음을 가진 의료진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은 소위 ‘로열 환자’가 많은 편이다.

실제로 태국은 GDP의 약 10%를 성확정수술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은 주마다 성확정수술을 시행하는 센터가 존재한다.

김 교수는 “다양한 국적의 성소수자들이 태국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며 “대한민국 의료진의 미세수술 술기가 훨씬 뛰어나고 의료기관 시설도 월등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이 성확정수술의 메카로 인식되고 있어 아쉽다”고 밝혔다.

이에 성확정수술의 허브를 태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오는 꿈을 매일 꾸고 있고, 오늘도 이를 이뤄내기 위해 병원 내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한 걸음을 걷는 중이라고 전한 김 교수다.

그는 “성소수자들이 병원에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차별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일반화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며 “하지만 성소수자를 위한 작은 배려 하나가 병원의 환경과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우리나라에도 해당 병원이 얼마나 성소수자들에게 친화적인 병원인지를 인증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며 “태국에서 한국으로 성확정수술의 허브를 옮겨 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