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 전사다] 팬데믹 시대, 인간다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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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나 전사다] 팬데믹 시대, 인간다움이란
  • 병원신문
  • 승인 2022.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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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해운대부민병원 적정진료팀장
긴 감염병 터널,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지나갈 것

팬데믹 시대, 인간다움이란

2019년 12월, 언론을 통해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설 연휴 직후 고열에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외국인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는데 원내로 진입했다는 보고를 접했다. 다음 날은 외국을 다녀온 고열의 환자가 내원했다. 덜컥 겁이 났다. 수년 전 신종플루 때를 떠올리게 한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그날 이후 약 700일째 24시간 비상근무 중이다.

가장 먼저 감염병 대응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정문을 폐쇄했다. 환자 출입 동선을 후문 한곳으로 일원화하고 기초 선별대를 설치해 출입 관리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감염병 사태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인식 차이로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못해 적정진료팀 전원이 한동안 찬 바람 부는 후문 밖을 지켰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그즈음 대구에서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터졌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해 부산에 있는 우리 병원까지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부터는 우리 부서뿐 아니라 전 직원이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선별진료소를 설치하면서 전 직원이 교대 근무에 돌입했다. 어쩌면 내 앞의 이 환자가 확진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직원들은 무섭다고 했다. 당시 고된 근무로 실제로 퇴사한 직원들도 많지만,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2009년 겨울에도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가 있었다. 신종플루 때는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병원 밖 컨테이너에 마련된 진료소에서 의자 위로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안내했었다. 당시 신종플루는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일주일간 복용하면서 안정을 취하면 대부분 나았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아직 치료제가 없고 폐를 침범해 위중증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으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라는 점에서 신종플루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해운대부민병원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위탁 의료기관이자 코로나19 치료기관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매일 수백 명이 백신을 접종받는가 하면 매일 정오부터 다수의 코로나19 환자들이 입원한다. 코로나19 격리병동은 감염 방지를 위해 입원 시 착용한 옷과 소지품 등은 모두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병실에 들어서면 퇴원할 때까지 절대 문밖을 나갈 수도 없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종종 벌어진다.

입원할 때 가지고 온 것은 퇴원할 때 전부 버려야 한다고 사전 공지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용 캐리어에 무언가를 잔뜩 챙겨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는 할머니, 입원 중에 간식을 사드셔야 한다고 현금을 챙겨오겠다던 할머니도 계셨다. 또 할아버지 한 분은 병실이 갑갑하다고 자꾸만 문을 열고 나오시려고 해서 간호사들이 애를 먹었다.

우리는 지금 길고 긴 감염병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이다. 감염병이 아닌 ‘간식을 즐기는 할머니’, ‘소중한 것들을 캐리어에 담아 간직하고픈 할머니’, ‘사람들과의 소통이 간절한 할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서 인간적 가치, 사람다움은 무엇일까?

어쩌면 코로나19 이후 우리에게 남겨질 상처는 위기와 혼란의 상황에서 인간답지 못했다는 자책일지 모른다. 질병의 치료와 예방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전사이기 보다는 배려와 돌봄, 정서적 패닉 상태에 대한 진심 어린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간호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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