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포스트코로나, 병원계 과제…'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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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포스트코로나, 병원계 과제…'인력'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2.01.01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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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확충 없는 병상 확보는 땜질식 처방…중장기 전략 필요
의료현장 전문가 의견 수렴 및 소통 강화 및 재정 지원 뒤따라야

병원신문은 2019년 12월 첫 발생 이후 만 2년을 넘기며 전 세계인의 발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먹구름이 걷힌 이후 병원계가 발빠르게 수립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2022년 신년기획 주제를 ‘포스트 코로나 병원계 과제’로 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병원계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 가운데 우선순위에 따라 ‘감염관리’와 ‘인력’, ‘공공의료’, ‘시설·장비’로 세부 주제를 구분해 다뤘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치료제가 속속 등장하면서 잦아지는 듯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은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오미크론 변이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새로운 양상으로 국면을 전환하고 있다.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라고 했다. 병원신문의 2022년 신년기획이 팬데믹 종식 이후 국내 병원계가 도약하기 위한 작은 실마리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사진=연합
사진=연합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2022년 새해가 되도록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확산하면서 보건의료 인력 번아웃(burnout)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확진자 폭증 상황과 별개로 지난 2년간 정부의 새로운 방역지침이 제시될 때마다 의료계의 희생이 뒤따른 데다가, 팬데믹 초반까지만 해도 사명감으로 버틴 보건의료 인력들이 견디기 힘든 시점이 됐다.

이는 곧 감염병 대응체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정부도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다.

하지만 당장 만족할만한 수준의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마땅한 묘안이 없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는 게 현장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다.

보건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코로나19 대응 초기부터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당시에는 감염병 대응의 선발대나 마찬가지인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우선 대두됐다.

정부가 2018년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중앙에 30명 이상, 각 시·도 지자체에 2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했지만, 고용형태 및 급여수준이 열악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 보니 역량을 갖춘 역학조사관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이는 결국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은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감염병 사태 이전에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인력 부족 문제는 역학조사관에서 끝나지 않았다.

예상 밖으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환자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까지 폭증세에 놓여 이제는 전쟁터의 본진 병력에 해당하는 의료인력이 절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21년 11월 시행된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6~7천명대를 넘나들면서 곳곳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이 이어졌다.

이때도 정부의 시선은 인력 확보보다도 병상 확충 위주였다.

대한병원협회를 필두로 범 병원계가 전면에 나서 가용 가능한 병상을 최대한 동원하겠다고 하는 사이에 정부가 잠시 손을 놓고 있던 인력 문제의 심각한 균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장에서는 인력 확충 없는 병상 확보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며 정부 조치에 괴리감을 느낀 것.

병상이 환자를 돌보는 것도 아닌데, 인력 공급 없이 병상만 확보하겠다는 것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호소도 나왔다.

신승일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정부의 병상확충 계획은 인력공급안 등 실질적인 실행계획이 없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업무 가중, 처우 미흡, 지원인력 부족 등 열악한 환경이 더해지면서 헌신하던 의료인력의 퇴사율이 급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뿐 아니라 상급종합병원 등이 운영 중인 선별진료소, 선제검사소, 백신예방접종, 생활치료센터 등도 자체 인력만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에 달한 상황이라는 게 신 위원장의 주장이다.

전공의 추가 투입도 요원하다.

이미 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전공의가 코로나19 대응 인력으로 대거 투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최근 일선 전공의 6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전공의 진료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97%에 육박했다.

과별로 살펴보면 내과(81.1%)와 응급의학과(27.2%)가 비중이 높았지만, 모든 과에서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27.2%였다.

서연주 대한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중환자 중 누군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등 전공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해 하루하루가 고역”이라며 “밤새 근무하는 것은 차치하고 관할부서와의 괴리가 큰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 의료인력 확충 계획 발표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용 병상 확보에 속도를 내면서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1천2백여 명의 신규 인력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올해 1월까지 코로나19 전담 병상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의사 104명, 간호사 1,107명 등을 중환자 진료 병원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교육이 진행 중인 중증환자 전담간호사 약 256명도 3월까지 추가 투입하며 기존 의료기관에서 비코로나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을 재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의 2월 말 훈련소 입소를 연기하고 훈련기간을 단축 또는 취소키로 했으며, 병원 기존인력과 파견인력 간 인건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출장비를 폐지하고 업무난이도에 따라 수당을 차등화 한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은 “병상 확충과 함께 의료인력 충원 및 지원도 강화한다”며 “최소한의 필요인력을 제외한 군의관, 공중보건의사를 중증환자 진료 병원에 확대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1차장은 이어 “수당도 더 인상해 예우를 강화하고 단기적인 인력 파견보다는 병원의 정규 인력이 확충될 수 있도록 파견 인력을 병원에서 채용할 경우 인건비의 일부를 6개월간 보조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진료에 투입하는 병원 내 의료인력에 대한 감염관리 수당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계획은 어느 정도 현장 목소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중환자실 경험이 부족한 인력이 투입되면 이들의 재교육을 기존 인력이 담당해야 하는 데다가 교육과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은 별개라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병상과 인력이 코로나19 진료로 쏠리면서 발생할 일반 환자에 대한 진료 차질이 또 다른 인력 부족 현상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얘기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전담 의료진을 위한 수당 신설이 150만원 내외의 인센티브로 작동할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의료진 사기 진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진료 현장의 한 의료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파견된 인력은 병원 적응 문제도 있기 때문에 즉시 가용 인력으로 투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재교육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일분일초가 소중한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결국 비코로나 환자 진료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임시방편 인력 확보 방안으로는 또 다른 인력 공백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다”고 덧붙였다.
 

포스트 코로나 대비 인력 확충 중장기 전략 세워야

이처럼 눈 앞에 펼쳐진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킴과 동시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려면 지금이라도 인력 확충에 대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백번 양보해 정부가 현재까지 발표한 병상 확충 및 인력운영 계획이 제대로 정착된다고 한들, 코로나19 종식 이후 다른 감염병에 의한 팬데믹이 재차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최근 한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수십 년째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과 부족 문제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더욱 두드러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의사와 간호사 같은 면허 체계 내 의료인 양성은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음으로 정부가 먼 미래를 바라보고 유사시 대응 가능한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교육해서 활용할 수 있는 조처를 해줘야 한다는 게 요지다.

정영호 회장은 “환자 치료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의료인력의 인건비, 시설 유지 및 병원 운영을 위해 필요한 비용 등이 적정하게 보상될 수 있는 체계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 있어서 방향 없는 정부 정책이 더 힘들다며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제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병협이 주최한 ‘The 12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1(KHC2021)’에 참석한 병원계 리더들은 인력을 포함한 의료정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호소했다.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은 “의료정책과 관련해 5년, 10년 후 아젠다를 정부가 천명해야 한다”며 “단기 계획만 발표하면 정부 요구안대로 지키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기획조정실장은 “정책을 발표하고 현장에서 준비할 시간을 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며 “준비하는 입장에서 따라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인 타임테이블을 구성해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실제 현장의 실무 담당자와 책임자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회를 더 주고 귀담아들어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유인상 병협 보험위원장도 “정부가 의료기관 현장으로 좀 더 긴밀하게 다가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하는 등의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의료인력의 활용 효율성을 높이려면 재원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전략의 중요성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제기되는 주장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공공보건의료인력, 어떻게 양성하고 지원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최근 개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공보건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취약한 공공의료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남자 간호대학 졸업생이 점차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해 군복무를 대체할 지역공공병원 및 공중보건간호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공공보건의료 인력난”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공의료 인력은 국가적 재난의료 중심으로 질적 도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이사장의 경우 감염병 창궐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긴급히 투입될 수 있는 의료인력을 퇴직자에서 찾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익 전 이사장은 최근 지역언론인클럽과의 간담회에서 “전국 의과대학을 퇴직하는 교수의 절반이 공공의료기관에서 계속 일을 하겠다고 답한 조사가 있다”며 “또한 전체 간호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휴 간호사에게 공공의료에서 일할 기회를 주면 지역의료인력을 일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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