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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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
  • 윤종원
  • 승인 2004.11.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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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급훈이 걸린 초등학교 5학년 교실.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코미디다.

반면 "(선생님은) 청와대보다 높은 곳에 계신 분"이라는 마지막 부분의 대사. 영화가 한 길로만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이 영화에 기대를 걸어도 좋은 것은 그 때문. 영화는 드라마가 아기자기한, 뒷맛 깔끔한 휴먼 코미디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로 명실상부한 A급으로 올라설 염정아의 호연은 영화가 "뒷심"이 약하다는 평가마저 딛고 일어서게 만들었다. 영화의 마무리를 놓고 남녀 관객 반응의 차이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염정아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여정임은 분명하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는 "선생 김봉두"에 이어 장규성 감독이 다시 한번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차승원의 미덕이 묻어났던 전작은 촌지를 밝히는 교사의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염정아의 "참 맛"이 발견되는 "여선생 Vs 여제자"는 노처녀 교사의 이야기다. 새로 부임한 미술 교사를 놓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열두 살짜리 제자와 경쟁을 펼치는 것. 그러나 이것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서는 "진정한 스승상"을 배치해놓았다.

장 감독은 "선생 김봉두"에 이어 이번에도 약점이 있는 교사의 통과의례기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를 놓고 "영화가 안전한 결말을 선택했다"며 눈흘기는 시선도 있다. 끝까지 폭소를 기대했으나 잔잔한, 혹은 허술한 감동으로 노선 변경을 하더라는 것. 그러나 이 영화는 자극적인 조미료도 없고 싸구려 재료도 없는, 그러면서 아주 개운한 맛을 내는 맑은 장국 같다. "웰빙 영화"라 불러도 좋을 듯.

"앗싸라비아 콜럼비아∼"를 외치며 깡마른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염정아의 코믹 연기는 이제껏 보던 김정은의 코믹함과는 또다른 재미를 준다. 아무리 몸을 꼬고 표정을 크게 해도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염정아만의 힘이다. 기름기를 바싹 제거한 듯한 그의 몸놀림은 싱싱한 봄나물 같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동요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열심히 부르다가, "좋겠다 너희들은 파래서…"라며 한숨을 쉬는 노처녀 선생. 올해 만 서른 둘인 염정아는 마치 "너 딱 걸렸어"라는 듯 캐릭터를 향해 돌진했다. 새로 부임한 "킹카" 미술교사에게 홀딱 반해 주책을 떠는 염정아는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무척 상큼하게 소화해냈다. 화면에서 참 능청맞게 노는 그의 모습은 이제 카메라 앞에서 그가 진정한 자유를 찾았음을 느끼게 한다.

두번째 학교 이야기라서 그런지 장 감독은 초등학교의 소소한 정경을 더욱 자신있게 펼쳐놓았다. 휴대폰과 인터넷 문제, 교육감 시찰, 가정 방문 등의 에피소드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아이들을 벌 주면서 싸운 이유를 재연해보라고 주문하는 대목은 무릎을 탁 치는 재미를 준다.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학원물을 벗어나, 초등학생들에게 조명을 비춘 것도 차별화에 성공했다. "6학년 언니들이 오래!"라며 협박을 할 수 있는, 5학년 아이들의 세상이 추억을 자극한다.

장 감독의 발전을 확인하는 것도 반갑다. "재밌는 영화"로 데뷔한 후, "선생 김봉두"로 전국 250만 명을 모은 장 감독은 세번째 영화에서 또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염정아가 차승원에 비해 어느 정도의 스타 파워를 과시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 영화가 "선생 김봉두"보다 세련된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화장실 유머나 가학성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자지러지게 웃기는 대목이 이어지고, 비교적 많은 이야기들이 아귀가 맞게 전개되며 "바람직한 결론"으로 흘러가는 것. 장 감독의 이러한 솜씨는 "휴먼"보다는 "코미디"에 무게를 두는 김상진 감독과 차별화를 이루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인다.

발칙한 여제자가 복수심에 불타 "노처녀"라는 제목의 시를 읊는 모습과 선생님의 얼굴을 기억해내며 "선생님이신데요~"라며 딱지를 떼지 않는 교통경찰의 모습은 급변하는 교육 환경과 그 속에서도 지켜져야 할 그 무엇을 단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 했다.

라스트 신에서 "스승의 은혜"와 "어버이의 은혜"를 섞어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잡은 것 역시 이 영화가 선사하는 따뜻한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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