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코로나 중환자실 우선배정 기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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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코로나 중환자실 우선배정 기준 필요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1.12.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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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기준 적용 시 의료인 법적보호 받는 시스템 구축해야
의료기관별로 기준 다르면 안 돼…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 중요
현 상황 개선방안 여지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코로나19 위중증환자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한정된 중환자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코로나19 환자들 때문에 일반 중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로, 예민하고 다루기 어렵다는 핑계로, 병실 우선배정기준 지침 마련을 계속 미루면 더 큰 위기가 덮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12월 8일 용산 임시회관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중환자 병실 우선배정 기준안 마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지난해 대구동산병원에서의 경험과 외국 사례를 바탕으로 마련한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을 소개했다.

홍 교수는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 중 입실 기준을 총 4가지 우선순위로 제안했다.

우선순위에 따르면 예측 생존율 80% 이상은 1순위(장기부전 1개), 예측 생존율 50% 이상 2순위(장기부전 2~3개), 4개 이상 장기부전 예측생존율 50% 이하 3순위, 말기장기부전 예측생존율 20% 이하 4순위다.

이와 달리 현재 정부가 권고한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 입실 기준’은 △인공호흡기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 △인공호흡기 이상의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 △기타 중환자실로 신속히 이송할 필요가 있는 환자 등으로 돼 있어 한정된 중환자실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힘든 구조라는 게 홍 교수의 지적이다.

홍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는 의료자원을 총 동원해 최고의 치료를 냈던 의료행위에서 제한된 의료자원을 이용해 최적의 치료를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료전문가와 윤리전문가, 정부가 조기에 사전협의를 해야 하고 협의된 기준을 적용할 때는 의료인이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언했다.

(사진 왼쪽부터)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차기 회장, 임채만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사진 왼쪽부터)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차기 회장, 임채만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의료전문가들의 입장은 홍 교수의 생각과 대동소이했다.

중환자실은 단시간에 쉽게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입퇴실 우선순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차기 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은 “중환자실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공간은 아니다”며 “중환자 치료가 환자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위기 상황 속 한정된 의료자원을 끝까지 투입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환자를 돌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 투입될 의료자원이 줄어드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라며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찢어지는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지침이 잘 만들어져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임채만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지침이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으면 곧 비합리와 비윤리적인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국민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인지 정리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즉, 입퇴실 기준안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료인과 국민 두 당사자 간의 이해와 수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임 회장은 “중환자실 우선배정 기준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와 정부의 승인, 법률적인 검토까지 거쳐 국민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감염병이 창궐했다고 해서 다른 질환의 중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에 이들이 치료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명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부수적인 피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임 회장이다.

그는 “유동적인 코로나19 특성상 변이 등 예기치 못한 변수에 따라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자주 조정하려면 민·관·학 합동 ‘중환자실입퇴실위원회’ 같은 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왼쪽)과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왼쪽)과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반면 현재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 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은 “현재 위기인 것은 분명 맞지만, 더 동원할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의 여지, 지금 있는 병상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여지 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극단적인 전시상황 수준으로 생각하고 윤리적인 이슈를 다루기에는 아직 고려할 부분이 남았다”고 역설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병실 배정 우선순위 기준이 당장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가용할 수 있는 의료자원 확보를 통해 개선 방향을 먼저 찾았으면 좋겠다”며 “자칫 잘못 이해하면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니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기준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마다 제각각이면 안 된다”며 “공통적인 상황에 적용할 순서를 체계적으로 정하고 각각의 병원이 이를 잘 지킬 수 있는지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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