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법, ‘현재’보다 ‘미래’가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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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법, ‘현재’보다 ‘미래’가 더 걱정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1.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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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지원 더욱 줄어드는 현상 불 보듯 뻔해
‘감시받으며 누가 외과계 지원하겠나’ 하소연도
대전협, “예외조항 있지만 전공의 기피 심해질 것”
이미지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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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현재의 의료계뿐만 아니라 미래의 의료계도 암울하게 만들었다는 하소연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의료계와 국민에게 미칠 부정적 파장만큼이나 기피과 확대로 인한 더 큰 악재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CCTV 설치 의무화로 전공의 기피과 전락이 예고된 외과계의 한숨이다.

의료계는 최근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법안 통과 절차를 밟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다.

의료계가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의사와 환자 간 불신 조장 △개인의 기본권 침해 △필수의료분야 쇠락 단초 △전문가적 가치 훼손 △환자 보호 역행 △수술 부담에 따른 방어 진료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시점에서 예측 가능한 악영향보다 다가올 미래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른 세대, 다른 생각 그리고 수술실 CCTV

외과계 교수들은 CCTV 설치는 곧 의료사고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문제는 전공의들이 의료분쟁에 예민하고 이를 두려워한다는 것에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외과계 A교수는 “이미 일부 전공의들은 수술실이라는 공간과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사고로 인한 부담감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이번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특히, 작금의 전공의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워라벨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힘들고 위험한 일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수술실 CCTV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젊은 의사들은 임상으로 유명해지거나 명의가 되려는 의지보다는 본인이 잘하는 것을 찾아서 창업과 연구자, 개발자의 길을 걷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2020년대를 살아가는 세대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세대의 의사들에게 안 그래도 힘든 수술방에서 CCTV로 감시까지 받아야 한다고 하면 무리해서 수술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외과계 침체 장기화와 기피 가속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줄어들어 결국 병원 경영 악화로 직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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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젊은 외과 의사들이 힘들어도 끝까지 도전해 본인의 꿈을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젊은 세대의 특징이 맞물려 현재보다 미래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다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다루는 수술을 하는 과와 목숨과 직결되지 않는 일반적인 수술을 하는 과의 양극화도 심해질 전망이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소화기외과 교수)은 “당연히 외과 전공의가 감소할 것이고 그나마 있는 전공의들도 위험한 수술을 피할 것”이라며 “위험한 일을 회피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데 의사의 양심이라는 표현 아래 본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무조건 하라고 제자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외과 지원율이 크게 하락하기 시작하면 10년간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며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보는 환자를 누가 보상해 줄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2년 유예기간만 봐도 외과계 전공의 지원율 참담할 것

이 같은 선배 의사들의 우려는 젊은 의사들에게 벌써 고스란히 적용되는 모양새다.

제25기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당선인은 이번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뒤를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당분간은 수술실 안에서의 불법 행위가 사라지겠지만 전공의들이 외과계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훗날 수술할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 자명하다는 주장이다.

여한솔 당선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 환자가 급감하면서 전공의 지원율이 하락한 것처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으로 수술하는 과들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전공의 수련 목적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예외조항으로 두고 있지만 이는 유명무실한 조항이라고 봤다.

이미지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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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당선인은 “예외조항이 잘 지켜졌으면 의료현장 속 다른 많은 논란이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외과계를 기피하고 안 하고는 예외조항과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길게 볼 것 없이 2년 유예기간 동안 전공의 지원율 현황만 봐도 이번 법안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부분을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부연했다.

수도권의 한 B전공의는 젊은 의사들에게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이슈가 되는 순간, 즉각적이고 솔직한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래에 의사가 될 학생 입장에서 앞으로 수술실 CCTV에 감시당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누구도 절대 외과계열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 번 기피과가 돼서 지원자가 없으면 다음년차 지원자는 일이 가중될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 기피과로 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과계 전공의들 사이에서 전문의 합격 후 외래 진료만 봐도 되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찾으려는 생각이 만연해질 것”이라며 “현실적인 지원책에 대한 고민 없이 CCTV 설치를 강행하면 흉부외과와 비뇨의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외과들도 전공의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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