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흔들리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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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흔들리는 구름
  • 윤종원
  • 승인 2006.03.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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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거부된 섹스, 흔들리는 구름

수분을 가득 머금은 시원한 수박, 한여름 무더위를 단번에 날리기에는 수박만한 게 없다. 그러나 수박으로도 해소하지 못하는 목마름이 있다. 인간 내면의 갈증, 현대인의 고독이다.

영화 "애정만세" "구멍" 등으로 알려진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차이밍량(蔡明亮)감독의 "흔들리는 구름"은 이 시대 도시인의 갈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아 개봉이 연기됐던 작품. 음모 노출, 화장실 자위 등의 장면을 2분36초 가량 삭제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개봉된다.

배경은 극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가는 대만. 마실 물도, 씻을 물도 없다. 여기에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개천처럼 메마른 두 영혼이 있다. 포르노 배우인 샤오캉은 한밤중에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서 목욕을 하고, 여주인공 싱차이는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물을 길어 나른다.

두 사람이 목말라 하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다. 이들은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타들어가는 듯한 가슴을 서로 쉽사리 적셔주지 못한다.

싱차이는 샤오캉이 포르노 배우라는 사실을 모른다. 샤오캉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싱차이를 뜨겁게 맞이하지 못한다. 그에게 섹스는 촬영장에서의 노동일 뿐이다.

어느날 싱차이는 샤오캉의 포르노 영화 촬영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두 사람은 분출하지 못했던 서로의 사랑을 충격적인 방법으로 확인한다.

포르노 영화 촬영과 음모 노출 등 파격적인 장면이 등장해 단순히 "야한" 영화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검열이 심하다는 대만에서도 무삭제 개봉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소통이 거부된 섹스"라는 카피처럼 이 영화의 섹스 장면은 "군중 속의 고독"과도 같은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는 첫 장면에서 여자의 다리 사이에 수박을 놓고 벌이는 섹스에서 목격된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의식이 없는 여자와 섹스를 하고, 이를 촬영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감독의 초점은 충격적인 섹스 장면에 있지 않다. 포르노 촬영장의 후텁지근한 분위기, 샤오캉과 싱차이의 건조한 분위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감독의 시선은 현대인의 고독으로 향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마른 땅처럼 느릿한 호흡으로 대사도 거의 없이 흘러간다. 대신 중간중간에 삽입된 뮤지컬 형식의 극은 감정을 과잉 표출하면서 갈증을 씻어버리는 듯한 독특한 구조를 택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수박을 아무리 먹어도 풀어지지 않는 현대인의 갈증이 더욱 목마르게 느껴진다.
31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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