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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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홀리데이
  • 윤종원
  • 승인 2006.01.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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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규
1988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들떠 있던 서울 한 곳에서 스코어피언스의 "홀리데이"가 흘러나왔다. 무시무시한 인질극을 벌이고 있던 탈주범 지강헌의 요구였다. 사실 그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요구했으나 경찰이 잘못 틀어준 것.

1988년 10월 8박9일 동안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탈주범들의 인질극은 지강헌의 세상을 향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절규와 함께 막을 내렸다.

영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제작 현진씨네마)는 지강헌 사건을 통해 눈부신 경제적 성장의 이면을 헤집어 본다. 군사독재에 체념했던 사람들이 올림픽과 경제 성장,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시대의 유화책에 중독돼 있을 무렵 벌어졌던 이 사건을 다룬 영화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애썼다.

2년반여의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시나리오로 옮겨진 이 작품은 위헌 판정으로 작년에야 사라지게 된 "보호감호제도"의 폐해에 대한 고발과 함께 인질들의 동정심을 유발했을 정도로 "신사적"이었다는 탈주범들에 대한 인간적인 시선으로 접근했다.

주인공은 지강혁(이성재 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으나 그는 지강헌이다. 논픽션에 픽션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최민수).

강혁과 안석의 악연은 안석이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강혁의 동생이나 다름없던 후배 주환을 사살하면서 시작됐다. 절도로 수감된 강혁에게는 형량의 두배나 되는 보호감호가 적용돼 10년 넘게 교도소에서 썩어야 했다.

강혁과 안석은 교도소내에서 사사건건 맞부딪친다. 안석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의 공권력을 상징하는 인물. 강혁은 병을 깨 안석에게 덤벼들고, 안석은 교도소 방장 대철을 시켜 농구 경기를 위장해 살해하려 하는 등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린다.

강혁은 이감 중 탈옥 계획을 세운다. 그를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강혁에게 동화된 대철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이에 같은 감방의 죄수들이 합류한다. 동생의 미용실 학원비 30만원을 훔치다 보호감호 제도 탓에 17년 동안 죄수 생활을 해야 하는 민석(여현수), 특사를 꿈꾸다 좌절된 대철(이얼), 몇 번의 소매치기 끝에 14년의 형량을 받은 장경(장세진), 대철의 오른팔 광팔(동현), 초코파이를 배 터지게 먹는 게 소원인 상호(문영동)가 의기투합한다.

그들을 자극한 건 수백억대 금융사건을 일으켰음에도 고작 7년형에 특사로 풀려난 가진 자들. 그들에게 형량은 돈의 있고 없음에 따라 결정되는 억울한 세상의 칼날이었다.

"실미도" "공공의 적2"를 썼던 김희재 작가는 다소 과장됐으나 정확한 어법으로 이들의 분노를 전하고, "리베라 메"와 "바람의 파이터"를 만들었던 양윤호 감독은 별다른 기교 없이 정공법으로 이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이성재의 연기는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이 지강혁에 집중돼 있는 모습을 선보인다. 지강혁에게 신사적인 느낌이 나고,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임에도 지적인 냄새가 나는 건 이성재의 힘이다.

최민수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뱀 같은 안석"을 연기했다. 극단의 악역이 최민수라는 배우를 만나 독특한 캐릭터로 표현됐다. 그러나 최민수의 연기는 때로 부담스럽다. 최민수의 캐릭터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 그의 색다른 연기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느냐의 여부는 지강헌이라는 인물에 얼마만큼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조연들의 호연은 칭찬받을 만하다.

영화 클라이맥스, 동료들이 죽고 지강혁마저 죽음을 향해 나아갈 무렵 들리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참 서글프다. 1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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