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당신이 그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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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당신이 그녀라면
  • 윤종원
  • 승인 2005.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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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지만 뚱보 언니, 막 나가지만 이쁜 동생
언니 로즈(토니 콜레트). 잘 나가는 변호사다. 능력있고, 아담한 집과 옷장에는 명품 옷과 신발이 즐비하다. 그런데 실제 그 옷과 신발을 걸치는 일은 거의 없다. 뚱보인데다 못생겼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동생 매기(카메론 디아즈). 돈 한 푼 없어 언니에게 빌붙어 산다. 거기다 심한 난독증으로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쭉 뻗은 몸매와 예쁜 얼굴로 연애에 관한 한 "선수"다.

언뜻보면 이 영화는 미국판 "광식이 동생 광태"같다. 남자 바꾸기를 식은 죽 먹기 하는 동생과 남자와 진실한 사랑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인 언니가 대비되기 때문. 거기에 동생 친구가 형의 사랑을 빼앗았던 설정의 "광식이 동생 광태"를 넘어서 이 영화에선 동생 매기가 모처럼 사랑에 빠진 언니의 남자를 건드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영화는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머리는 텅 비어있는 듯한 허황된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에 머무르지 않는다. 제목 속에 그 뜻이 숨겨져 있다. 원제는 "in her shoes". 구두는 예부터 여성들의 심성을 대변하는 오브제였다. 춤을 추지 않고서는 못배길 정도의 욕망이 드는 안데르센 동화의 "빨간 구두"와 자정까지만 허용된 위태로운 환상을 대변하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만 봐도 그렇다.

로즈의 옷장에 빼곡이 숨겨져 있는 수십개의 화려한 구두에는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두 자매의 공허한 심경이 들어있다.

언니의 남자를 건드리는 바람에 쫓겨난 매기는 우연히 아버지 서랍에서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외할머니의 카드와 편지를 발견한다. 무엇때문에 숨기셨는지에 대한 의문보다는 몇 천 달러의 돈이라도 울궈내려는 계획으로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외할머니 엘라(셜리 매클레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세월의 간극을 느끼면서도 엘라의 딸이자 매기의 엄마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 서서히 드러나며 세상의 마지막에도 변하지 않을 가족애가 고개든다.

매기를 떠나보낸 로즈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에 괴롭다. 그는 로펌을 나와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 사이 로펌의 동료였던 사이먼(마크 류어스타인)이 접근하며 성공을 향해 살기만 한 로즈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엘라의 초청으로 로즈가 실버타운에 온다. 워낙 철없이 살지만 결코 좋지 않은 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약혼자에게조차 말하기를 꺼렸던 로즈 앞에 매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멋진 의상을 골라주는 코디네이터에 난독증까지 헤쳐나왔으며, 무엇보다 노인들의 삶에 활력을 주는 존재가 돼있는 것.

엄마없이 살아오면서 상처받았던 두 자매의 끈끈한 사랑과 함께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두 자매만 등장했을 때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였을 것 같은 영화가 외할머니의 등장으로 삶의 희로애락과 진심이 담겨있는 특별한 영화가 된다.

세 여배우의 호연은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한다. 외적인 매력이 강조돼왔던 카메론 디아즈는 자신이 바비인형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상큼한 미소와 돋보이는 몸매가 아닌 진실이 담겨 있는 연기로 새삼 주목하게 된다.

토니 콜레트의 연기력이야 주지의 사실. "뮤리엘의 웨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는 우러나오는 내면 연기로 카메론 디아즈와는 또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그 누구보다도 셜리 매클레인의 건재함은 영화팬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50여편의 영화를 통해 10번의 골든글로브상 수상, 두 번의 베니스영화제 주연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을 결코 숨기지 못한다. 거기에 세월을 겸허히 받아들인 듯한 그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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