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료인 안전 정착되는 임세원법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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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료인 안전 정착되는 임세원법 마련돼야
  • 한봉규 기자
  • 승인 2019.02.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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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보 고려대환경의학연구소 연구 교수(법학박사)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안전한 진료 환경의 조성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먼저 의료법, 응급의료법, 정신건강복지법 등의 개정안인 이른바 임세원법이 발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가해자 처벌강화, 비상벨·비상공간 설치, 반의사 불벌죄 삭제, 주취자 감형폐지, 형량 하한제, 벌금형 삭제, 보안요원 배치, 의료기관 안전기금 신설, 의료인 보호권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이에 대하여 어떻게 논의되고 통과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정부 협의체를 구성하였으며 대한병원협회는 1월 한달 동안을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환자진료의 숭고한 역할을 수행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기관 내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행 가중처벌 및 심신장애 형벌감면 적용 배제와 함께 위급상황 시 사설 보안업체 직원에 의한 물리력 행사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안전한 진료환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병원현장에서도 발 빠르게 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먼저 서울대병원은 원내 폴리스 제도를 시행하여 순찰을 강화하였으며 정신과 병동 보안요원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이들에게는 3단 진압봉과 전기 충격기를 지급하고 흉기에 대비한 방검복도 착용하도록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신과와 응급실 보안인력을 충원하여 약 100여명의 보안요원이 활동하도록 하였으며 서울아산병원은 비상벨이 울리면 보안요원을 즉각 투입하는 원내 핫라인과 비상통로를 마련하였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도 각각 100여 명에 달하는 보안요원 및 진료실 내 비상벨을 기존에 운영하고 있었으나 의료진 보호 강화 방안을 추가로 마련할 방침이다.

일찍이 세계의사협회(WMA)는 2012년 10월 태국 방콕에서 있었던 제63회 총회에서 ‘의료분야의 환자 및 그 관련자에 의한 폭력에 관한 성명’을 채택했다.

거기서 WMA는 “모든 인간은 폭력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면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력은 직접 관여하는 의료 종사자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의료제도 전체와 그 제공에도 영향을 미치고 노동환경의 질에 영향을 주어 환자케어의 질에 악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폭력의 위험도가 높은 장소로는 일반 진료지역, 정신과 시설, 응급부문 등 사람의 출입이 많은 곳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국가는 환자 및 의사와 다른 의료 종사자의 안전과 안심을 확보할 의무를 가지며 의료제도는 의료 종사자와 환자의 안전을 추진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 의사는 폭력적인 환자의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갖기도 하며 이 때 의사는 해당 환자의 건강과 치료를 위해 관계당국에 의해 적절한 조치가 강구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어 정신장애 환자들은 치료 제공자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있으므로 이런 환자의 치료 제공자는 충분히 보호되어야 하고 존경과 상호 신뢰에 근거하는 의사와 환자 관계의 조성은 환자 케어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폭력의 리스크를 줄이게 된다고 강조한다.

의료계 종사자의 안전사고와 관련하여 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2012년 세계의사협회(WMA) 총회에서 채택한 ‘의료분야의 환자 및 그 관련자에 의한 폭력에 관한 성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직장에서의 폭력이 의료업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조직적으로 일률적인 감정에 따라 일을 해야 되는 이른바 ‘감정노동’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및 건강장해 등의 피해를 겪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

폭언이나 욕설은 물론 성희롱까지 일삼는 악성고객으로 인하여 근로의욕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일까지 불러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해 10월18일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즉 사업주로 하여금 고객응대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일정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아울러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그 벌칙으로 전자의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후자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감정노동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한 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임세원법의 마련에 참고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에서다.

감정노동자와 고객의 문제는 매출을 늘리기 위하여 ‘고객은 왕이다’라고 하는 고객에 대한 무한대의 친절서비스를 요구하는 사업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자가 희생이 되더라도 고객을 무조건적으로 갑으로 모시려고 하는 사회의 부산물이었다.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환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료종사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안전은 제대로 담보될 수 없다.

현재 의사에게 폭력적인 환자의 치료를 거부할 권리 이른바 의료인 보호권이 거론되고 있음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또 한편으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는 의료종사자에 대한 폭력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방안 즉 환자 케어의 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폭력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각 의료단체에서는 의료인의 안전을 위한 대안으로 의료법, 응급의료법, 정신건강복지법 등의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소극적 처방보다는 의료인의 안전에 관한 독립법 예컨대 ‘의료인안전법’ 제정을 통한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환자안전을 위하고 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환자안전법’을 하나의 독립법으로 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환자 안전과 의료인 안전을 포괄하는 ‘환자 및 의료인 안전법’ 또는 ‘의료기관안전법’으로 일원화 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환자의 치료 제공자가 보호되고 상호 존중과 신뢰에 근거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환자 케어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폭력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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