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료사고시 면허취소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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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료사고시 면허취소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의 문제점
  • 병원신문
  • 승인 2018.04.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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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 김선욱 변호사
2018. 3. 29. 의료인의 대리수술, 진료 중 성범죄 또는 무허가 주사제의 사용 등 위법일탈행위에 대하여 자격정지나 면허취소의 행정처분을 예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위 개정안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 특히 의료인이 ‘의료사고’로 인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어 법원으로부터 형을 받는 경우, 자격정지(벌금형)나 면허취소(금고형)를 한다는 내용은 입법론적으로 문제가 많다.

개정안은 시사적인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면을 앞에 내세우고는 입법적 문제점은 감추고 있다. 위법일탈행위로 보아 법으로 규제하자는 내용을 먼저 보자. 의료인의 대리수술, 진료 중 성범죄 또는 무허가 주사제의 사용 등의 행위는 국민의 공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규제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우선 현행법으로 규제가 불가능한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위 일탈위법행위들은 현행법으로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되어 1년 이내의 범위에서 자격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 특히 진료중 성범죄를 범한 경우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이미 상당기간 취업이나 개업이 금지되어 있다. 면허취소와 다름이 없어 굳이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면허취소를 할 실익이 없다.

무허가 주사제 사용 행위는 매우 애매하다. 학문적으로 인정되어도 약사법상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아니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식약처 허가는 행정 절차적 영역이다. 개인이 면허를 박탈하는 영역과는 관련이 없다. 허가를 받은 주사제를 학문적 원리에 따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는지도 불분명하다. 의학적으로 정당성이 있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학문의 다양성상 보는 각도나 입장에 따라 의학적 정당성은 유동적이다. 의료인의 대리수술 부분도 명확성이나 예측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 환자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나,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여러 의료인이 협동하여 수술 등을 할 때 모든 관여 의료진을 미리 환자에게 알려줘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이렇듯 행정처분법규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대부분의 행정처분 규정은 형사처벌규정을 같이 가지고 있다. 행정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의 확정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등 행정청은 사실관계를 확정함에 필요한 강제 수사권이 없으며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형사적 판단을 먼저 받아 보고 그 이후 형사사건이 확정되면 그에 따른 사실관계를 가지고 법을 적용하여 행정처분을 하게 된다. 앞서 거론한 위법일탈행위 중 무허가주사제나 대리진료 등은 직접적인 형사처벌규정이 없다. 형사처벌규정의 뒷받침이 없으면 사실상 장식품처럼 사용될 뿐 실효성은 매우 떨어질 것이다. 물론 그러니 형사처벌규정도 만들자는 의견은 더더욱 아니다.

금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 부분은 역시 의료사고에 따른 업무상과실치사상 건에 대하여 자격정지나 면허취소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우선, 입법목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여 국가가 환자측을 대신하여 분풀이를 하자는 것이 입법의 목적은 아닐 것임은 명백하다. 의료사고에 있어 국민의 자력구제를 금지하고 범죄행위에 대한 비난적 벌을 국가가 대신하기 위한 형사처벌 규정(업무상과실치사상죄)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행정처분은 추구하려고 하는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 최소한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면허취소 규정은 면허제로 운영되는 우리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문제 행위에 대하여만 선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의료사고는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발생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해서 우리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는 정도의 행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다고 해도 통상의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지는 않는다. 음주운전 등 운전면허제도가 용인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에 한정하여 면허정지나 취소를 하게 된다.

다음으로 입법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국회는 2000. 1. 12. 의료법 개정을 통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형사 사건으로 의료인이 금고이상의 형을 받으면 무조건 면허취소를 했던 과거 의료법 규정을 개정한 적이 있다. 국회는 당시 당해 규제가 합리성이 없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의료법의 면허취소사유는 형법상 낙태죄나 허위진단서작성죄 및 의료법 등 보건의료관련법령을 위반하여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한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개정에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면허취소의 사유로 추가하지 않았다. 입법 과정에서 검토와 논의를 통하여 의료인이 업무수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등에 따른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하여는 면허의 불이익을 주지 말자는 입법적 결단이 있었던 것이다.

국회가 사회현상을 반영하여 시의적절하게 법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나타난 사회현상이라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거나 진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특정 사건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격앙된 여론을 반영한 법 개정은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는 전문적 영역에 관한 법 개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국가의 필수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영역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사기 재사용 금지를 법률에 넣은 나라이다. 전 세계에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보태어 전 세계에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우리 의료제도가 실상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국회가 법을 통해 만천하에 밝힐 필요가 있을지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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