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병원침몰과 병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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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병원침몰과 병원의 품격
  • 병원신문
  • 승인 2018.02.2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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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경희의료원 적정관리본부장
▲ 이종훈 본부장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 해의 정치상황과 사회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접하게 되는데 2017년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만약, 병원신문에서 지난해를 돌이켜 보며 병원계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한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병원침몰(病院沈沒)이 아니었을까 한다.

‘병원침몰’은 2000년에 일본의 의료경영컨설턴트인 니와 고이치, 스기우라 게이타가 저술한 원작을 문용욱 씨가 번역하여 2002년도에 출간한 책의 제목으로 오랫동안 호송선단방식(護送船團方式:정부 보호아래 경쟁 없이 경영하는 체제)에 흠뻑 젖어왔던 일본 의료계가 무한경쟁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절박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병원경영은 어제도 어려웠고, 오늘도 어렵고 아마도 내일 또한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출발 자체가 적정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병원도 경영이다’라는 화두로 병원경영혁신운동이 전개된 것이 1990년대 초(初)였고 서울 소재 K의료원의 경우 1994년도에 매스이노베이션(MASS innovation) 운동을 실천했던 기억이 새롭다.

병원침몰을 초래할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과 의료환경은 어떤 것들인가?

선택진료제도의 폐지, 의료법시행규칙(시설기준) 개정, 전공의수련환경 개선, 노사통상임금의 문제, 의약품결제대금지급기한 단축 등이 병원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투자여력을 약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될 것이다. 더욱이 문재인케어라고 일컫는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는 병원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켜 병원침몰의 결정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첫째, 선택진료제도의 폐지이다. 2014년도 이후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금년부터는 잔존한 1/3의 선택진료의사를 전문진료의사로 대체하는 것으로 로드맵이 설정되었지만 새 정부가 비급여의 전면급여를 표방하면서 완전히 폐지될 예정이다. 그 동안 중증질환의 처치 및 수술과 의료질평가지원금으로 손실을 보전해주었는데 최종년도인 금년도의 손실보전율이 크게 미약한 것으로 파악되어 경영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의료법시행규칙(시설기준)의 개정이다. 신설된 기준은 입원병상규모에 따른 음압격리병실 설치와 중환자실내 격리병상 설치이며, 개정된 기준은 병상 간 이격거리 확보이다. 음압격리병실과 중환자실 내 격리병상 설치를 위한 투자가 요구되며 병상 간 이격거리를 맞추기 위해서는 병원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 10% 정도의 병상감축이 불가피한 바, 리모델링 비용과 현행 병상규모의 필요공간 확보를 위한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막대한 규모의 재원이 요구된다.

셋째, 전공의수련환경개선 등에 관한 사항이다. 지난해 12월23일부터 발효된 ‘전공의의수련환경개선및지위향상을위한법률’에 의거하여 실제로 법적 효력을 갖는 사안이다. 수련시간 80시간 준수를 포함한 수련환경개선과 지위향상을 위한 급여현실화에 따른 병원별 인건비 부담이 엄청날 것으로 판단되며, 사립대의료원협의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제3회 미래의료정책포럼(‘의료자원정책과 병원경영’)의 토론에서 대학병원의 경우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넷째, 통상임금의 원칙적 적용이다. 통상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약정하고 노사계약에 명시한 임금을 뜻한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상여금의 포함여부인데 대법원 판례상으로는 포함하여야 한다. 다만, 노사 간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상여금의 전액이 아닌 일정액(율)만 포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일부 의료기관에 대한 실사를 통해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만약 노사 간의 합의를 불인정하고 원칙적으로 적용할 경우 엄청난 경영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섯째, 의약품결제대금 지급기한의 준수이다. 개정된 약사법이 지난해 12월23일 발효되었고 이후 납품한 의약품의 대금은 6개월 이내 결제가 의무화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대금결제기간이 6개월 이상이었던 병원들은 자금 부족에 직면할 수 있어 자구책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카드결제를 통한 신용공여의 방법을 강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의약품결제대금의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병원별로 수억 원의 이자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여섯째, ‘비급여의 전면급여화’이다. 이것은 문재인케어의 핵심으로 의료계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으로 규정하고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급여의 전면화가 이루어질 경우 의료기관의 모든 진료상황이 적나라하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적응증(indication)의 제한, 가격수준(price)의 하향, 행위빈도(frequency)의 제약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통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건의료정책환경에서 병원의 품격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병원의 품격’은 2008년 일본에서 출간된 가와부치 고이치(일본복지대학 경제학부 교수)의 원작을 필자가 공역하여 2011년도에 국내에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품격이 있는 병원이 갖추어야할 세 가지 조건으로 ‘환자중심의 실천력’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 조직문화’를 예시하고 있다..

열악한 보건의료정책환경에서 병원의 품격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의료법시행규칙 개정에 따른 시설기준, 3주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기준인 ‘병문안문화개선’, 3대 비급여의 급여화 일환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원유형별 역할을 정의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그리고 대금결제의 규범을 명문화한 ‘의약품결제대금 지급기한 준수’를 들 수 있다.

‘시설기준’에서 신설된 음압격리병실과 중환자실 내 격리병실 설치, ‘병문안문화개선’은 메르스 확산 이후 효과적인 감염관리체계 구축 및 감염관리 강화를 위한 것이고, 기준이 강화된 병상 간 이격거리는 입원환자의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감염관리와 환자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병원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2016년 4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 대한병원협회 그리고 상급종합병원협의회의 4개 단체가 업무협약을 체결하였고, 당해년도 말까지 43개 상급종합병원이 1개 병동 이상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이하 통합병동)으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현재 종합병원급 이상의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동 실현과 간병서비스의 질적 개선 또한 병원의 품격에 해당되는 사례이다.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은 일차의료 강화와 의료기관간의 기능분담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의원은 외래중심의 만성경증질환, 병원은 외래와 경증질환의 입원, 종합병원 이상은 중증질환의 입원, 그리고 상급종합병원은 고도의 중증질환 입원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인적·물적 인프라의 수준에 맞는 품격 유지에 대한 요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의약품거래대금 결제기한’의 경우 단기운영자금이 원활하지 못한 병원은 의약품거래대금 결제기한을 연장하여 운영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는 대금결제가 12개월 이상 지연되는 병원도 있지만 향후에는 납품 후 6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거래규모가 3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지만 3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반드시 준수하여야 한다. 아무리 경영이 어려워도 사회통념상 정상범주를 벗어난 상거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상대적 약자에 대하여 품격을 지키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발생한 이대 목동병원, 밀양세종병원, 세브란스병원의 사고들을 바라보며 진정한 품격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여력이 없어서 충분한 안전시설과 대응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병원으로서 지켜야 할 펀더멘털(fundamenta)에 충실하지 못한 점은 없었나 성찰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정부가 새롭게 출범할 때마다 표방하는 보건의료정책을 살펴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의료공공성 강화‘ 이다. 이는 공공성(公共性) 수행이 본질적 사명인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으로 인하여 신종플루(Influenza A), 중증호흡기질환(SARS), 중동호흡기질환(MERS)과 같은 국가적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민간의료기관의 참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다면, 대외활동을 통하여 많은 병원장님들을 가까이 모셔 온 사람으로서 ‘힘드니까 병원장이다’라는 말로 위무(慰撫)해드리고 싶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가 마무리 되는 시기가 되면 친근한 스마일페이스(smile face)가 냉랭한 포커페이스(poker face)로 바뀌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지난 해 연말에 발표된 제3주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결과에서도 상대평가기준인 전문진료질병군(A군)비율에서 만점을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진료질병군(C군)비율의 소수점 이하 편차에 의해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되는 현상을 지켜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솔직한 마음이었다. 다음 주기에는 현재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기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반드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금년도에 적용되는 환산지수는 종합병원 기준 72.3원이다. 지난해 5월 수가협상에서 어렵게 얻어낸 전년 대비 1.7% 인상된 상대가치점수당 단가이다. 그런데 이 인상률만큼 직접적인 수입증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병원의 행위빈도 비중에 따라 수입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추정컨대 1%의 수가 인상 시 약 0.5~0.6% 정도의 수입증가효과가 발생되고 부족한 부분을 보전하는 정도에서 비급여수가의 인상이 이루어져온 것이 아마도 병원계의 현실이 아니었을까 한다.

병원침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병원의 품격을 요구하는 정부가 과도한 것인가? 아니면 변화와 혁신으로 병원침몰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스스로 병원의 품격을 유지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병원계의 숙명적 과제인가? 정부 없는 의료공급자 또한 있을 수 없지만 의료공급자 없는 정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방통행(一方通行)과 선행후치(先行後置)가 아닌 소통협업(疏通協業)과 선치후행(先置後行)의 배려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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