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병원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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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병원 경영
  • 병원신문
  • 승인 2017.10.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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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삼성서울병원 상근고문
▲ 이종철 상근고문
4차 산업 혁명은 초연결성과 초지능으로 대변된다. ICBM, 즉 IoT, Cloud, Big data와 Mobile이 4차 산업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주재료들이다.

사물들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고 클라우드 상에 집결 되어 빅데이터를 형성하고,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분석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탄생되고, 적절한 서비스로 구현되어 모바일을 통해 전달된다.

강력해진 컴퓨팅 파워와 초연결을 통해 구축된 거대한 데이터들이 딥러닝으로 대표 되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만개 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의 하나인 인공지능은 우리의 진료 환경과 병원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가장 먼저 현실에 적용될 의료 분야가 어디인가를 예측해 보면 영상의학이나 병리 판독 같이 형태적 패턴를 분석하는 영역일 듯 하다.

유방 촬영술 판독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제품으로 나와있고, 루닛이나 뷰노 같이 탄탄한 실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영상분석 스타트업들도 가슴 X레이 영상을 자동 판독하여 활동성 결핵을 진단한다든지, 폐암이 의심되는 부위를 골라낸다든지, 소아의 골연령을 신뢰성 있게 측정해 준다든지 하는 가시적 성과들을 보여 주고 있다. 2016년 11월 구글의 연구자들은 딥러닝을 이용하여 안과 전문의들보다 당뇨성망막병증 진단 능력이 탁월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JAMA에 발표한 바 있고, 올해 2월 스탠포드대학의 연구자들은 사진을 통한 피부암 진단을 피부과 전문의들보다 낫게하는 프로그램을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형태 판독을 통해 진단에 이르는 영역들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자동화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이러한 영역에 종사하는 인력들에 대한 수요가 서서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하는 듯 하다. 인력의 수요와 공급 문제가 단순히 기술적 성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슨앤 존슨에서는 성능과 안전성을 미국 FDA로부터 승인받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수면유도마취 로봇 Sedasys를 출시하였지만 마취과 전문의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직면하여 사업을 접
은 일이 있었다. Sedasys로 인해 더 중요하고 규모가 큰 사업 분야들의 매출이 영향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존슨앤존슨처럼 다양한 제품군을 갖고 있는 대형 회사가 아
니라, 단일 품목으로 시장에 나서는 스타트업이었다면,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중소형 병원들을 중심으로 사업이 서서히 확장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대량의 판독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대형병원들까지도 영상이나 병리 판독을 강력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문 판독 기관들에게 보내 해결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청진기가 사라진다’의 저자 에릭 토폴은 인공지능의 시대에 형태와 패턴을 판독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영상의학과 병리학 의사는 더 이상 별개의 전문으로 구분하기보다는 Information Specia list라는 이름으로 통합 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라는 주장을 JAMA에 기고 하기도 했다.

2016년 봄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이라는 화두가 충격적으로 던져졌다면, 2016년 가을 우리 의료계에는 인공지능 의사라 불리는 IBM Watson이 갑자기 현실적 모습으로 다가 왔다.

우선은 유방암, 폐암, 대장암 등 몇 가지 암에 대한 첨단 정보와 치료 지침들로 무장된 IBM Watson이 해당 암환자의 임상 정보를 토대로 적절한 치료 옵션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IBM Watson은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문헌상에 발표 되는 최신 정보들을 빠르게 읽고 습득하여 임상 현장에서 필요할 때 적절한 조언을 제시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인공지능이다.

혹자는 IBM Watson을 보면서 인공지능이 의사라는 직종을 대체할 것이라는 자극적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인공지능이 ‘직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대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직업이 100% 자동화 될 수 있는 작업들로만 구성 되어 있다면, 그 직업은 결국 소멸되고야 말겠지만, 의사라는 직종은 수행하고 있는 작업 요소들의 복잡성으로 인해 통째로 대체 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건강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의사라는 직종은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존재하는 그 직업의 존엄한 가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의 작업들이 자동화 되면서 의사의 역할과 모습은 상당 부분 변해 나갈 것이 틀림 없고, 의사들 속에서도 그 변화의 진폭은 전문 분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앞서 기술했듯이 아마도 영상의학이나 병리 판독과 같은 분야가 가장 먼저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이 임상 판단 지원 시스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상황이 되면, 진료의 질이 상향 표준화될 수 있고, 안전과 관련된 실수들이 방지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의료의 질이 개개인 의사의 지식 수준과 판단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시스템에 의해 지원 받는 상황으로 변모하게되면, 개개의사의 가치는 지식보다는 의료 전달의 방식, 인간적 교감 능력 등에 의해 평가될 여지가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의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최상의 진료 표준화를 만드는 연구자로서의 의사와, 환자와의 접점에서 인간적 케어를 제공하는 일차 진료의로서의 의사 사이에 간격이 더 넓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첨단의 의료 현장보다는 오히려 일차 진료 현장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왓슨의 도입은 서울의 유수한 대형 병원보다는 지방 병원들을 중심으로 도입되는 실정이다. 인공지능이 의료에 적용되는 상황을 의료의 민주화라 표현하기도 한다 .

Watson for oncology는 메모리얼슬론케터링암센터의 의료진과 IBM의 협업으로 개발되었다.

이것이 태국의 범룬그라드병원, 인도의 마니팔 병원, 그리고 우리나라의 길병원 등에 도입되어 진료 보조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는 메모리얼슬론케터링 암센터의 높은 수준의 진료 지침이 이를 도입
한 병원으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수 전문가들의 독점적 지식 권력이 무너지고, 평균적 일반인들도 손쉽게 고급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의료적 판단 지침을 굳이 메모리얼슬론케터링암센터를 가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왓슨을 도입한 길병원에서도 왓슨 도입 이후 서울의 빅병원들로의 환자 유출이 줄어 들었다고한다.

인공지능을 통하여 의료의 지식 독점 상황이 해체 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여있던 의료기관들은 의료의 상향평준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의료의 민주화를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구축 시스템을 먼저 확충해야 한다. 병원의 의료 정보 시스템이 데이터 수집에 최적화 되어 있지 못하면, 환자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끌어 올 수 없고, 왓슨의 최신 정보와 개별적 환자의 임상 정보를 연계하여 분석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즉 왓슨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원 전산정보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이미 이루어 놓고 있으므로 의료 데이터 수집의 기본적 인프라는 갖춰진 셈이지만, 개개 의료기관들의 EMR 시스템이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서로간에 의료 정보 교류의 표준이 마련되지 못했다.

병원내 데이터가 병원 밖으로 나갈 때의 법적 규제 등과 맞물려 전국적 차원에서 의료기관의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은 훨씬 열악한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전국 의료기관의 데이터가 모두 집중되어 있지만, 이 또한 보험 청구 데이터에 국한 되어 있어 의료의 질을 평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데이터의 초연결성이라는 4차 산업 혁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각 의료기관의 데이터들도 종국에는 통합되어 분석 되고 이에 따라 기관별 의사별 진료성과가 객관적으로 비교 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는 개개의 의사에게는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국민보건의료 수준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진료 결과가 객관적이고도 투명하게 공개 되어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핵심은 분석 결과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하냐에 있을 것이며, 이것은 우선 각 의료기관의 의료정보시스템의 질에 좌우될 것이다.

수가 체계가 진료의 질과 가치에 따라 좌우 되는 상황이라면, 의료기관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도 진료 데이터 기반의 질지표들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질지표를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분석하여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하는데는 발달된 인공지능의 분석 능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병원마다 인공지능 기반의 임상의사결정시스템(CDSS; clinicaldecision support system)을 구축하는데 관심을 갖게 될텐데, 이 시스템 자체에 의료 수가가 책정된다면 도입이 훨씬 수월해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일지라도 병원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인공지능분석시스템을 미루기만 할 수는 없을 것
이다.

<도움말 성균관대 의과대학 장동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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