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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후 저지른 데이트 폭력, 실수 아닌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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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후 저지른 데이트 폭력, 실수 아닌 범죄
  • 박현 기자
  • 승인 2016.02.2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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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강간·폭행 등 연인 간 폭력 지난해 7천692건 발생…사흘마다 한 명꼴 숨져
문제적 음주 반복된다면 이미 본인 의지로 해결 어려워… 전문의 상담·치료 필요

#소개팅으로 만난 A씨(31세·남)와 1년여 간 연애 끝에 올 봄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B씨(29세·여)는 얼마 전 파혼을 결정했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을 자주 마시는 A씨가 취하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돌변한다는 이유에서다. B씨는 자신 역시 술을 좋아하고 '취하면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A씨의 주사는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B씨와 크게 다툴 때면 폭언은 물론 목을 조르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급기야 공공장소에서 B씨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등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해 경찰서에 연행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B씨가 파혼을 통보하자 A씨는 날마다 집으로 찾아와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마음이 약해진 B씨는 결국 한달 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A씨와 재결합을 선택했다.

B씨처럼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음주상태에서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의 경우 심각한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관련 상해는 2천306건, 강간·강제추행 509건 등 총 7천692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이중 살인은 102건에 달했다. 사흘마다 한 명꼴로 연인에게 목숨을 잃은 셈이다.

하지만 피해여성이 가해자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인만큼 이를 폭력으로 인지하기 어려워 피해자 수는 경찰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술에 취해 폭력을 가한 뒤 이를 뉘우치는 모습을 반복하는 A씨와 같은 경우 음주문제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 원장은 “연인 간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이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데이트 폭력 중 일부는 음주문제가 포함되어 있어 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여자친구를 감금한 채 폭행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산 의전원생 사건의 경우도 그동안 가해자가 상습적으로 주취폭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2일 대구시 달서구에서 C씨가 자신의 차를 몰고 여자친구 D씨의 가게로 돌진한 사건 역시 비슷했다.

이별을 통보한 D씨에게 앙심을 품고 난입한 C씨는 차에서 내린 뒤 흉기로 위협했고 이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이 언론에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C씨는 만취 상태로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D씨는 그와 교제한 지난 9년간 수차례 이별을 원했고 그럴 때마다 폭행과 협박을 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원장은 “음주 문제가 개입된 데이트 폭력의 경우 폭력이나 폭행의 수위나 강도에 가려져 가해자의 술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저지른 행위라며 술 탓으로 돌리며 넘어가다 보면 결국 문제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발표한 '2014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살인, 강간, 폭력 등 세 가지 범죄의 경우 범죄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중 폭력이 33.9%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강간 30.4%, 살인은 22.6%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면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은 물론 자기 통제가 어려워진다. 이는 우리 뇌에서 감정 조절과 사고력, 기억력을 담당하고 있는 전두엽이 알코올에 의해 손상됐기 때문이다. 일명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black-out)'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오랜 시간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일수록 전두엽 기능저하로 감정조절이나 충동조절 능력이 떨어져 더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의 강도가 심해진 상태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통제가 불가능해져 위험할뿐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데이트 폭력은 반드시 집착, 의심, 욕설 등의 전조 신호가 있으므로 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처음 폭행을 당했을 경우에는 단호하고 냉정하게 대처하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려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무형 원장은 “평소 점잖던 사람도 술을 마시면 난폭해질 수 있는데 하물며 평소 연인에게 데이트 폭력을 가하던 사람이라면 폭력의 강도나 정도가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 폭력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중 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까운 알코올 상담센터나 전문병원 등을 찾아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도움말=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무형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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