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상태바
<새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윤종원
  • 승인 2004.09.30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그동안 그렇게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잊혀진다는 게 너무 두렵다"는 말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그녀를….

아키가 죽던 날 몰아쳤던 태풍 29호, 함께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서로 주고받던 카세트 편지, 첫 키스를 나누던 강당과 같이 수업을 듣던 교실…. 아쉽게도, 서른 줄에 접어든 사쿠(오사와 다카오)에게 이런 기억들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는 그런 일들이다.

숨막힐 듯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은 그를 1986년, 먼 과거의 추억에 잠겨 있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고향 시코쿠로 가는 비행기를 탄 날도 야근에 지쳐 회사에서 아침을 맞이 하던 어느날이다. 결혼을 얼마 앞두지 않은 그는 약혼녀 리쓰코(시바사키 고)와 이삿짐을 나르기로 한 약속도 잊고 있었다. 뒤늦게 리쓰코의 집에 도착하지만 리쓰코는 한동안 쉬었다 오겠다는 편지만 남겨둔 채 사라진 후. 우연히 리쓰코의 행선지가 자신의 고향 시코쿠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쿠. 하지만 리쓰코를 찾으러 간 그곳에서 그는 가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아키를 발견한다.

올해 일본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10월 8일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된 동명 소설로 먼저 이름을 알린 "세상의 중심에서…"는 일본에서 석 달 동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 실락원"이 가지고 있던 일본 멜로영화 흥행 기록을 7년 만에 갈아치웠다.

그동안 거둬들인 흥행수입도 100억 엔을 넘어설 정도.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 나 "실미도"가 떠들썩하게 현지에서 개봉했을 당시 정상권에 머물고 있던 영화도 "세상의 중심에서…"였다.

감독은 "고"(GO)를 만들었던 유키사다 이사오.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 등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일본 영화의 조감독 출신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가을 개봉작 중 가장 윗부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사쿠(모리야마 미라이). 동급생 아키(나가사와 마사미)가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교장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다. 학생 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하는 아키는 질질 짜고 있는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리 담담한 모습이다.

공부도 잘하고 육상 선수인 데다 얼굴까지 예쁜 아키. 아키에게 사쿠의 첫 인상은 언제 생각해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한다. 육상 연습 중 우연히 올려다본 교실의 유리창, 입을 쩍 벌리고 야키소바(볶음국수)와 빵을 먹는 사쿠의 모습을 보고 아키는 미소를 짓는다.

어느날 하교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아키가 당돌하게 사쿠의 스쿠터에 올라타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데는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 워크맨과 라디오가 매개체가 된다. 음성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심야 방송에 엽서를 보내기도 하면서 아키와 사쿠는 소중한 첫사랑을 가꿔간다.

장밋빛 사랑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단 둘이 여행을 떠난 무인도에서다.

아키가 갑자기 쓰러진 것. 병원으로 옮겨진 아키, 백혈병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하는 그에게 아키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세는 악화되고 아키도 점차 희망을 잃게 되던 어느날, 사쿠는 아키가 늘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르던 호주의 울루루에 그를 데려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두 사람. 하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으로 둘은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아키는 공항에서 쓰러진다.

할리우드 영화나 최근 국내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은 줄거리 자체보다 인물의 감정선과 추억 속 과거의 애틋함에 많은 시간이 할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 극장가 "최루성 멜로 영화"의 팬들에게 넉넉한 여백과 잘 정돈된 화면, 서정적인 배경 음악이라는 이 영화의 미덕은 반가울 따름이다.

감독은 "고"의 빠른 호흡을 버린 대신 원작의 감성을 택한 듯하다. 소설과 달리 현재의 주인공들이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나가는 데 중점을 뒀지만, 이미 초반에 결론이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자극하는 것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즐거움보다는 인물들과의 공감에서 나오는 관객의 눈물샘이다. 상영시간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