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여름의 조각들

2009-03-23     이경철
방한 중인 쥘리에트 비노슈는 18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여름의 조각들" 촬영 현장에 대해 "즉흥적인 촬영이 많았지만 가족적인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런 현장 분위기는 아름다운 화면 안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26일 개봉하는 "여름의 조각들"은 문화 유산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움직임과 소소한 대화를 통해 풀어냈다.

프레데릭(샤를 베를랭), 아드리엔(비노슈), 제레미(제레미 레니에) 등 세 남매의 어머니는 남다른 예술적 감각으로 카미유 코로, 오딜롱 르동, 루이 마조렐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평생을 함께 보냈다.

어느 날 세 남매는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어머니의 집과 유품들을 정리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장남으로서 어머니의 추억을 지키고 싶은 프레데릭, 뉴욕의 현대 생활용품 디자이너로 프랑스가 별 의미 없는 아드리엔, 중국에서 아내, 자녀 3명과 함께 새 출발하려는 제레미는 어머니의 유산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낡았지만 친밀한 공간과 일상적인 소품들은 이 영화의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어머니의 숲속 호숫가집은 "고향" 그 자체다. 어머니의 생일에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이 정원의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은 어머니의 표현 그대로 "제자리를 찾았으니 옮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란다. 영화는 책상과 꽃병이 미술관에 들어가 예술적,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작품이 되지만 사적인 생활공간에서 가졌던 생생한 의미를 잃어 가는 모습을 차분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어머니의 집을 돌봐주던 노부인이 찾아와 펠릭스 브라크몽의 꽃병에 무심코 들꽃을 꽂아넣고 마조렐의 마호가니 책상에 아무렇게나 올려놓는 장면, 딸이 어머니의 우아한 고가구를 뒤져보다가 "청소도구함으로 쓰셨네"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미술관에서 책상 주변을 잠시 배회하다가 지나치는 단체관람 학생들과 대조를 이룬다.

영화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화법을 쓴다. 세 남매는 유산 처분을 놓고 다른 생각을 하지만 과장된 말다툼은 벌이지 않는다. 둘째 딸은 "막내의 사정을 생각하면 팔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드럽게 제안하고 맏아들은 자신없는 말투로 "코로의 그림은 중요한 건데…"라고 되뇔 뿐이다.

미술관에 갇힌 유품들을 보고 실망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래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사람들도 잘 보고 있지 않느냐"고 위로한다.

다만 예술품의 국외 반출에 대해서는 명확한 목소리를 낸다. 영화에는 감독이 구상해낸 가상의 화가 폴 베르티에가 중요 인물로 언급되는데, 폴 베르티에의 스케치북을 프랑스 밖으로 가져가 뉴욕 경매에 내놓으려는 아드리엔의 구상에 정부 위원회의 위원들이 확고한 반대 의견을 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의 20주년 기념작이다. 미술관에서의 회화 복원 작업, 실제 미술관내 작품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