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F] 환자와 의료 인력의 병원 내 여정

(주제 발표1) 환경 지속 가능성…실제 사례로 살펴보는 지속 가능한 의료

2026-10-20     정윤식 기자
(왼쪽부터) Karan Thakur 인도 아폴로병원그룹 대외협력·지속가능경영 담당 부사장, Natalia Allué 스페인 몰레트 의료재단 의무원장, Robert Mardini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 CEO, Simon Radmore 호주 노던시드니 지역보건구 전략·최고경영자실 총괄이사, Paul Quitiquit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성심의료센터장. ⓒ병원신문.

[병원신문=정윤식 기자] 대한병원협회(회장 유경하)와 국제병원연맹(International Hospital Federation, IHF)가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제49차 IHF 세계병원대회(World Hospital Congress)’의 첫 번째 주제 발표에서는 전 세계 보건의료 리더들이 기후 변화 위기 극복을 위한 지속 가능성 전략을 공유했다.

이번 세션의 제목은 '환자와 의료 인력의 병원 내 여정(환경 지속 가능성, 실제 사례로 살펴보는 지속 가능한 의료)'으로 Karan Thakur 인도 아폴로병원그룹 대외협력·지속가능경영 담당 부사장이 좌장을 맡았다.

패널로는 Natalia Allué 스페인 몰레트 의료재단 의무원장, Robert Mardini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 CEO, Simon Radmore 호주 노던시드니 지역보건구 전략·최고경영자실 총괄이사, Paul Quitiquit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성심의료센터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현장 주도의 탄소 발자국 감축 사례와 거버넌스 구축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며 지정학적 긴장과 예산 압박 속에서도 각국 병원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Karan Thakur 좌장. ⓒ병원신문.

■ Karan Thakur 좌장: 보건의료계는 스페인 독감과 천연두, HIV/AIDS, 코로나19 등 수많은 위기를 협력을 통해 극복해 왔다. 이제 우리 앞에는 기후변화라는 또 다른 도전이 놓여 있다.

대기오염과 폭염, 홍수 등은 환자 건강과 병원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보건의료 시스템 자체도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의료를 위해서는 병원 경영진뿐 아니라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의료 현장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나?

■ Robert Mardini CEO: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가뭄, 홍수, 분쟁이 보건의료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목격했다. 병원이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면서 환자의 건강을 보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병원에서는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탄소 발자국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에 230개 진료 단위를 대상으로 교육과 54개의 근거 기반 친환경 진료 지침을 제공하고, 각 부서가 실천 과제를 선택해 실행하도록 했다.

노인병 진료 부문에서는 환자별 맞춤형 검사로 전환해 3개월 만에 혈액검사를 25% 줄였다. 응급진료에서는 오타와 무릎 규칙을 적용하고 전산 알림을 도입해 경미한 무릎 부상 환자의 엑스레이 촬영 비율을 26%에서 4%로 낮췄다.

1년 만에 41개 진료 단위가 참여했으며, 21개 단위가 인증을 받았다. 총 92개의 진료 관행이 도입됐고 이 가운데 63개는 비용 효과가 검증됐다.

■ Karan Thakur 좌장: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면 의료진이나 환자가 진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어떻게 바꿀 수 있나?

■ Robert Mardini CEO: 진료를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진료를 하자는 것이다. 의료의 약 60%는 근거 또는 합의된 지침을 따르지만, 30%는 낭비이거나 가치가 낮고 10%는 해를 끼친다는 ‘60-30-10’ 개념이 있다.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는 것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진료를 개선하는 일이다.

정맥주사 약물을 경구약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환경적 영향을 줄일 수 있지만, 환자가 약을 삼킬 수 있는지와 통증 정도 등은 의료진이 판단해야 한다. 경영진은 방향을 설정하고 실제 실행 방법은 현장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Simon Radmore 총괄이사. ⓒ병원신문.

■ Karan Thakur 좌장: 호주에서는 두 마취과 의사가 나눈 대화가 주 전체의 마취가스 사용 정책을 바꿨다고 들었다. 어떤 과정이었나?

■ Simon Radmore 총괄이사: 두 마취과 의사가 탄소 발자국이 크고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높은 데스플루란(Desflurane)의 사용 문제를 제기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의료진은 임상적 근거를 공유하고 동료들에게 대체 마취가스 사용을 제안했다.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환경적 영향을 줄일 방법을 찾은 것이다.

우리 조직은 ‘넷 제로 리드 프로그램(Net Zero Lead Program)’을 통해 의료진이 지속 가능성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원을 지원했다. 이러한 노력이 확대되면서 뉴사우스웨일스 보건부는 데스플루란을 주 전체 처방 목록에서 제외했다.

현재는 아산화질소에도 같은 접근법을 적용하고 있다. 로열 노스 쇼어 병원은 지속 가능성을 목적으로 일부 건물의 아산화질소 배관을 제거한 주 내 최초 병원 중 하나가 됐다. 다만 임상적으로 필요한 경우 실린더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 Karan Thakur 좌장: 개별 의료진의 제안이 정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했나?

■ Simon Radmore 총괄이사: 가장 중요한 것은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기존 관행의 문제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대안과 기대 효과를 함께 제시했다.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도 설명했다.

현장에서 신뢰받는 임상의들이 변화를 이끌었고, 병원과 지역 보건당국, 주정부 리더들이 이를 받아들여 정책으로 연결했다. 의료진의 아이디어와 조직의 실행 의지가 결합한 결과다.

■ Karan Thakur 좌장: 정책 변화에는 경제적 근거도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 Robert Mardini CEO: 의료 서비스의 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건의료 비용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료의 질과 접근성을 유지하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면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Karan Thakur 좌장: 지속 가능성이 시설이나 에너지 관리 부서만의 업무로 남아서는 안 된다. 실제 의료진과 직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Natalia Allué 의무원장. ⓒ병원신문.

■ Natalia Allué 의무원장: 처음에는 각 부서장에게 이미 많은 우선순위 업무가 있어 지속 가능성 활동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 환경 문제에 관심과 의지가 강한 직원들을 찾아 ‘지속 가능성 앰버서더’로 지정했다.

이들이 각 부서의 실천 전략을 수립하고 동료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약 10년 전에는 전 직원에게 지속 가능성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문화가 조직 전반에 정착해 의무교육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자신의 업무 현장에서 지속 가능성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 Simon Radmore 총괄이사: 우리도 지구 건강 챔피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병원별 지속 가능성 위원회와 지역 보건국 차원의 협의체를 통해 현장의 경험을 공유한다.

동시에 이사회와 경영진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진료 모델을 도입할 때 환경적 영향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으며, 의료진에게 실질적인 활동 시간과 자원도 지원한다. 결국 현장의 자발적인 참여와 경영진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 Karan Thakur 좌장: 지속 가능성에는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의 참여도 필요하다. 몰레트 의료재단에서는 환자와 함께 의료 서비스를 재설계하고 있다고 들었다.

■ Natalia Allué 의무원장: 친환경 병원이라고 하면 태양광 패널이나 지열에너지, 폐기물 관리 등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변화는 의료진과 환자가 진료 과정을 함께 바꾸는 데서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정투석이다. 만성 신장질환 환자가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방문해 3~4시간씩 투석받는 대신, 가정에서 작은 장비를 이용해 매일 약 1시간씩 투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환자와 가족의 자율성을 높이고 혈역학적 관리 등 임상적 측면에서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병원 방문 횟수와 물 소비량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스코프 1·2 영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했으며, 현재는 환자와 직원의 이동 등을 포함한 스코프 3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약 17만5,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지구 건강 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방자치단체와 1차 의료기관, 환자, 약사 등이 참여해 영양과 이동 수단, 대기질, 천연자원 등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 Karan Thakur 좌장: 새로운 진료 모델을 도입하면서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유지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Paul Quitiquit 의료센터장. ⓒ병원신문.

■ Natalia Allué 의무원장: 환자와 가족, 전문의, 간호팀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 전담팀과 의료 질 관리 부서, 경영진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JCI 인증 기준과 제네바 지속 가능성 센터의 평가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가정투석 장비처럼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진료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2010년부터 지속 가능성을 추진하면서 의료의 질을 최우선으로 유지해 왔다. 환자들도 이러한 원칙을 이해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성은 우리 병원의 중요한 정체성이 됐다.

■ Karan Thakur 좌장: 지속 가능성은 병원 내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필리핀에서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이 지역사회에 무료 식수를 제공한다고 들었다.

■ Paul Quitiquit 의료센터장: 필리핀 바기오시는 원래 약 5만 명을 위해 설계된 도시지만 현재 50만~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물 공급이 불규칙하고 가격도 비싸다. 나 역시 일주일에 세 번만 정부로부터 물을 공급받는다.

병원도 많은 물을 사용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병원 앞에 대형 식수 충전소를 설치하고 환자와 직원, 학생, 건설 노동자, 택시 기사 등 누구나 무료로 물을 이용하도록 했다. 주변 병원도 물이 부족하면 이용할 수 있다.

병원 각 층과 대학 캠퍼스에도 식수 충전소를 설치했다. 그 결과 지역사회와 병원 사이의 신뢰가 높아졌으며 고객 추천 지수인 NPS가 이전보다 56점 상승했다.

■ Karan Thakur 좌장: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됐나?

■ Paul Quitiquit 의료센터장: 처음에는 병원에 반입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누구나 물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예상보다 큰 효과를 확인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한 달에 약 50만 개의 플라스틱 물병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작은 실천이 병원과 대학, 지역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Robert Mardini CEO. ⓒ병원신문.

■ Karan Thakur 좌장: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를 확대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력도 필요할 것 같다.

■ Simon Radmore 총괄이사: 의료기관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대학과 학술기관의 도움을 받아 근거 기반의 연구와 추적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병원의 탄소 발자국을 분석하기 위해 전문기업 아룹(Arup)과도 협력하고 있다. 외부 기관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이를 병원 운영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 Karan Thakur 좌장: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를 묻겠다. 경영진은 지속 가능성 투자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 Robert Mardini CEO: 초기 투자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 의료진의 아이디어를 적극 지원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실행하면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불필요한 검사와 처치를 줄이고 자원 사용을 효율화하는 것은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수익률(ROI)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로 봐야 한다. 환경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 동시에 병원 경영에도 현명한 선택이다.

■ Karan Thakur 좌장: 오늘 논의에서 확인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 특정 개인이나 부서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진이 방향을 제시하고, 의료진이 현장에서 실천하며, 환자와 지역사회가 참여할 때 변화가 가능하다.

로베르트의 사례는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는 것이 의료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이먼은 현장 의료진의 아이디어가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탈리아는 환자와 협력해 진료방식을 재설계하는 중요성을 보여줬다. 폴의 사례에서는 병원이 자원을 지역사회와 공유함으로써 신뢰와 참여를 높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결국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환경보호 활동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와 병원 운영,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함께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실천이 세계 각국의 병원으로 확산하길 기대한다.

(왼쪽부터) Karan Thakur 인도 아폴로병원그룹 대외협력·지속가능경영 담당 부사장, Natalia Allué 스페인 몰레트 의료재단 의무원장, Robert Mardini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 CEO, Simon Radmore 호주 노던시드니 지역보건구 전략·최고경영자실 총괄이사, Paul Quitiquit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성심의료센터장. ⓒ병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