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격적인’ 심평원…종착지는 ‘혁신’인가 ‘혼란’인가
[병원신문=정윤식 기자] 홍승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의 취임 이후 행보가 기존 관행을 탈피하며 조직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이야기가 최근 자주 들려온다.
홍승권 원장의 행보는 인사부터 내부 조직 재편까지 파격의 연속이다.
최근 역대 최연소이자 AX(인공지능 전환) 전문가를 진료심사평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국의 진료심사평가위원들은 대부분 의료계 원로들로 구성될 만큼 임상 경험과 연륜이 매우 중시되는 자리다.
즉, 홍승권 원장은 의료계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고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에 인공지능이라는 대세를 앞세워 파격을 시도한 셈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 자체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데다가 향후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인사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는 벌써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AX 전문가가 수십 년 경력의 임상 의사들을 진두지휘해 심사 기준을 조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지적인 것.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심평원의 진료심사평가는 결국 환자 생명과 직결된 임상적 판단의 영역”이라며 “단순한 데이터나 매뉴얼로 재단할 수 없는 현장의 수많은 변수와 예외 상황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 역시 “진료심사평가위원들은 각 진료과에서 산전수전 겪은 시니어 원로 교수들이기에 위원장이 이들의 이견을 조율하고 심사의 권위를 세우려면 무엇보다 임상적 연륜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AI가 대세이긴 하나 무리한 혁신을 강행할 경우 자칫 심평원의 심사평가 결정 자체를 의료계가 불신하고 수용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장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텔레그램(Telegram)’ 활용 역시 또 다른 파격 행보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공공기관의 내부 소통 및 업무 지시와 별도로 홍승권 원장은 실장급 간부들과 텔레그램 방을 만들어 직접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재라인을 간소화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보안과 기록이 생명인 공공기관에서 사설 메신저로 주요 업무를 논의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공식 시스템을 우회하는 소통 방식이 오히려 간부들에게 과도한 압박이나 피로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홍승권 원장 취임 이후 대폭 확대된 비서실 규모도 눈에 띈다.
기존 7명이었던 비서실 직원을 직급에 상관없이 11명으로 늘렸으며 약학·간호학·사회복지학·법학·언론 전문가 등이 대거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7월 전문기자단 간담회에서 홍승권 원장은 “전문성을 강화하고 현장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원장이 열 걸음을 다가가는 것보다 비서실과 함께 열한 걸음을 같이 가는 게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협업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소통 채널로서 인원과 직역을 확대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기조 아래 홍승권 원장의 예고대로 언론소통전문가 채용이 본격화됐다.
심평원은 9월 8일부터 22일까지 원장실 비서실 소속의 정책소통전문가를 선발하기 위한 채용 공고 및 원서접수를 진행 중이다.
채용된 전문가는 기관장 보좌 및 공보, 언론 등 이해관계자 소통 자문을 담당하게 된다.
공고된 직무설명자료에 따르면 해당 직위는 임원실 비서실 소속으로 주요 정책 상시 모니터링, 대외 위험요소 및 갈등 요인 관리 등을 담당한다.
직무 설명 자료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선, 정책소통전문가 직무의 목적은 국민 체감형 정책소통 역량 및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갈등요인에 대한 체계적 관리 역량 고도화를 비롯해 정부 국정과제 및 기관장 핵심추진과제에 대해 국민과 이해관계자 눈높이에 맞게 정책을 설명해 정책수용성을 제고하는 것 등이다.
핵심과업별 책임 및 역할은 △기관장 보좌(기관장 추진과제 및 정부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소통 전략 보좌, 기관 공식입장 및 기관장 메시지의 기획·조정·총괄 관리) △공보 및 정책소통 관리(주요 정책에 대한 대·내외 소통 전략 수립·관리, 정책소통 활동 상시 모니터링 및 개선과제 발굴·환류, 의료계·국민 등 이해관계자 간 주요 정책 이슈 선제 대응) △대외 소통 자문(언론 등 이해관계자, 국민지원 및 소통 담당 부서에 전문 자문, 임직원 대외 소통역량 강화 매뉴얼 개발 및 코칭) 등으로 기재됐다.
세부과업은 △국민·언론 등 이해관계자와 기관장 간 정책소통 보좌 △정부 국정과제, 기관장 핵심추진과제, 중점지시사항 이행 현황 점검 및 소통전략 수립 △기관 공식 보도자료, 기관장 연설문·메시지 작성사항 검수 및 조정 △주요 정책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및 개선과제 발굴·환류 △국민·언론 등 이해관계자 등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자료 및 절차 등 전문 자문 △정책추진 등으로 발생가능한 대외 위험요소 및 갈등요인 체계적 관리 △임직원 대외 소통역량 강화 매뉴얼 개발 등으로 확인된다.
지원 자격은 △관련 학과 박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으로서 언론사 기자 업무(취재·보도), 중앙부처·공공기관의 정책 홍보 또는 공보 등 관련 업무 경력 3년 이상인 자 △관련 학과 석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으로서 언론사 기자 업무(취재·보도), 중앙부처·공공기관의 정책 홍보 또는 공보 등 관련 업무 경력 5년 이상인 자 △관련 학과 학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으로서 언론사 기자 업무(취재·보도), 중앙부처·공공기관의 정책 홍보 또는 공보 등 관련 업무 경력 7년 이상인 자 중에서 1개 이상 필수 포함돼야 한다.
관련 학과는 △홍보 △커뮤니케이션 △신문방송 △언론정보 △경영 △국문학 등이고, 언론사 경력은 중앙일간지 및 방송사에 한정됐다.
계약기간은 계약체결일(10월 둘째 주 예상)로부터 2027년 12월 31일까지이며, 근무성적 평가 결과에 따라 최대 2년 범위로 재계약이 가능하다.
보기에는 제법 그럴 듯하다.
문제는 정책소통전문가의 직무 목적, 핵심 과업, 책임 및 역할, 세부과업 등이 심평원의 기존 홍보실 및 국민지원실의 업무와 놀라울 정도로 상당 부분 겹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실 업무보다 더 방대하다는 점이다.
과거 심평원이 언론대응력 향상과 홍보 효율성 제고를 위해 홍보실장과 언론홍보부장을 개방직으로 임용한 사례가 있지만, 원장 직속 비서실에 전담 전문가를 두는 것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옆집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구조다.
특히 대외 소통 자문 역할 중 ‘언론 등 이해관계자, 국민지원 및 소통 담당 부서에 전문 자문’과 ‘기관 공식 보도자료 및 기관장 연설문·메시지 작성사항 검수·조정’을 명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표면적으로는 자문·검수·조정이지만 사실상 소통전문가가 업무의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언론에 대한 전문 자문도 포함인데, 이를 수많은 언론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의문이다.
아울러 기존 홍보실장이나 언론홍보부장, 언론홍보팀장 상위에 위치하는 이른바 ‘옥상옥’ 구조로 비칠 여지가 다분하다.
세부적인 업무 영역이 다르다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불필요하게 생겨날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든 결정이 비서실을 통과해야만 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되며, 외부 의료계 단체를 비롯해 성격이 각기 다른 언론사와의 관계 정립 역시 모호해진다.
이미 수십년간 이어진 심평원 조직의 노하우 안에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해낼 인재가 진정으로 단 한 명도 없을까.
왜 비슷한 규모의 공공기관들이 비서실 직속으로 언론소통전문가를 굳이 두고 있지 않을까.
언론소통전문가의 세부과업에 ‘대외 위험요소 및 갈등요인 체계적 관리’가 있는데, 혹시 심평원은 지금 대외 위험요소와 갈등요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의 출발점은 이 부분에서 시작돼야 하고, 심평원 직원들 개개인의 능력을 먼저 믿어야 한다.
어느 조직에나 고착화된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한 파격은 필요하다.
홍승권 원장의 선택 역시 오랜 관행을 타파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심평원이라는 거대 공공기관을 지탱해 온 시스템을 일거에 뒤흔드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수반한다.
개혁이 성공하면 조직의 혁신으로 남지만, 실패할 경우 그 뒷감당과 원상 복구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원과 노력은 곱절이 소모돼 최악의 경우 버티지 못하고 침몰한다.
그 과정 속에 놓인 기관 조직원들이 입게 될 상처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극심한 갈등도 간과할 수 없다.
소통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혁신은 비서실의 몸집을 키우거나, 외부 전문가를 늘리거나, 파격 인사만 반복하는 것 등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기존 심평원 시스템 문화 및 의료계 현장과의 적절한 조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특히, 누구나 이해 가능한 최소한의 범주여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홍승권 원장의 연속된 파격은 성공하면 ‘혁신’이고, 실패하면 ‘혼란’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를 비롯해 의료계와 심평원 직원 그 누구도, 심지어 홍승권 원장조차도,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갈 수 없기에 이 파격 선택들의 성패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 자체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부디 홍승권 원장 체제의 심평원이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진정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결과물만 내놓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파격 행보들에 대한 주변 우려가 기우이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