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특집] AI와 스마트병원, 생명존중의 미래 의료를 설계하다
대한병원협회 창립 67주년 특집…AI 시대, 병원의 생존 전략 정찬권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스마트병원장(병리과 교수) 서울성모병원이 그리는 스마트 의료의 미래와 AI 마스터플랜
이제 의료 현장에서 AI(인공지능)는 매일 사용하는 일상의 도구가 됐다.
병원 운영부터 환자 서비스, 의료진의 업무 환경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병원을 논할 때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은 최신 기술의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로 어떤 의료를 실현하고, 어떤 병원을 만들 것인가?’이다.
서울성모병원이 그리는 스마트병원의 청사진은 바로 이 근원적인 성찰에서 출발한다.
기술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AI와 디지털 기술의 목적은 의료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진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행정 부담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진짜 목적이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스마트병원은 단순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환자의 불안과 고통을 세심하게 살피고 의료진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인간 중심의 치유 공간’이다.
이것이 가톨릭 의료기관으로서 오랜 시간 굳건히 지켜온 ‘생명존중과 전인적 돌봄’의 가치이자, 서울성모병원이 추진하는 AI 마스터플랜의 핵심인 것이다.
◆ 기술 경쟁을 넘어 ‘책임 있는 의료 혁신’으로
가톨릭중앙의료원(이하 CMC)은 지난 5월 ‘의료 인공지능 운용에 대한 CMC 윤리 강령’을 선포했다.
이 강령은 의료 AI를 단순히 효율성만 추구하는 혁신 도구로 바라보지 않는다.
AI가 치유를 돕는 유용한 도구인 동시에,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한 결과다.
따라서 서울성모병원의 AI 전략은 속도전이나 외형적인 기술 경쟁이 아닌, ‘책임 있는 의료 혁신’이어야 한다.
AI가 환자와 의료진의 유대 관계를 대신할 수 없으며, 진료와 돌봄의 최종 책임은 언제나 의료진에게 있다.
우리는 AI를 무조건 빨리 도입하기보다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프라이버시가 안전하게 보호되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병원 내부의 이익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환자에게 공정하게 환원되는지를 먼저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빠른 혁신보다 바른 혁신이 선행되어야만 진정한 생명 존중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데이터 연결과 AI가 바꾸는 의료 현장
최근 의료 AI는 특정 질환 예측이나 영상 판독 등 단일 목적의 솔루션을 넘어, 병원 전체 시스템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겪고 있다.
EMR, 영상, 병리, 유전체, 생체신호 등 병원 내 모든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AI는 병원의 디지털 거버넌스를 재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생성형 및 멀티모달 AI의 발전은 진료 준비, 의무기록 작성, 임상 의사결정, 연구 지원 및 행정 업무에 이르기까지 의료 전반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다각적인 영역에서 구체적인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 환자 중심의 디지털 프로세스 고도화
가장 먼저 변화가 체감되는 곳은 환자 서비스 영역이다.
모바일 앱과 키오스크를 통해 병원 이용 전 과정이 디지털로 전환됐다.
원내 길 찾기, 모바일 문진, 접수·수납,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온라인 증명서 발급 등은 단순한 편의 기능의 추가를 넘어선다.
환자가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진료를 마치고 귀가한 이후까지 모든 접점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환자 중심의 디지털 안내 프로세스’를 통해, 환자가 겪을 수 있는 불안과 대기를 최소화하는 여정의 최적화 과정이다.
다만 이러한 디지털 편의성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바일 앱과 키오스크가 늘어날수록 그 곁에는 디지털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인적 지원과 쉬운 안내 시스템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서울성모병원이 추구하는 스마트병원은 가장 앞선 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가장 도움이 필요한 환자까지 따뜻하게 품는 포용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 안전망 구축과 정밀 진단
이러한 포용의 가치는 진료 현장의 촘촘한 안전망 구축으로 이어진다.
서울성모병원은 병원 내 지능형 무선 환자 감시장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자체 nU 시스템 기반의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했다.
일반 병동과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상태 악화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위험을 예측함으로써, 의료진이 골든타임 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 AI가 제시하는 알림은 최종 판단이 아닌 보조 수단이며, 환자에게 적용되기 전 반드시 의료진의 전문적인 검토를 거치는 프로세스를 엄격히 고수하고 있다.
정밀 진단 영역에서도 혁신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디지털 병리와 영상의학 영역에 AI 판독 보조 솔루션을 결합해 정확성과 효율성을 고도화 중이고 향후 병리, 영상, 유전체, 임상 정보가 하나의 환자 여정 안에서 연결된다면 AI는 종합적인 판단 도구로 발전할 것이다.
여기서도 진단 AI가 의료진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결과만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의료진이 그 판단 근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설명 가능성’을 기본 조건이다.
◇ 치료 영역 확장 및 업무 파트너
나아가 서울성모병원은 디지털치료제(DTx) 플랫폼을 통해 병원의 치료 영역을 원내에만 가두지 않고, 퇴원 후 환자의 치료 연속성을 지원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로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환자 중심의 혁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업무 환경 변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의료 특화 음성인식 텍스트 변환 기술(STT)과 거대언어모델(LLM)의 결합은 의료진의 시공간적 제약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의료진의 음성을 구조화된 의무기록으로 자동 변환하고 대화 요약, 서류 작성, 처방 제안 및 위험 알림까지 지원하며 EMR을 단순한 기록 저장소가 아닌 ‘지능형 업무 파트너’로 진화시키고 있다.
다만 의료의 정확성을 위해 AI가 만든 기록은 반드시 의료진이 최종 확인하고 수정 이력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철칙을 적용한다.
◇ 데이터 기반 운영 엔진
결과적으로 스마트병원은 진료실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으며, 병원 운영 측면에서도 AI와 디지털 기술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강력한 엔진이 된다.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실시간 자산 위치 추적(RTLS), 그리고 병원 경영 정보를 시각화하는 ‘nU Board’ 등을 통해 병원의 모든 자원을 데이터 기반으로 연결했다.
병상, 장비, 인력, 수술실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 미래 의료를 지탱하는 데이터 거버넌스
이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CMC 차원의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이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글로벌 표준 의료 데이터 규격(SNOMED CT, LOINC, HL7 FHIR, DICOM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 연구와 진료 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결하고 있다.
환자의 질병 정보부터 영상 검사 결과까지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표준 형태로 관리함으로써, 데이터의 안전성을 높이고 이를 병원의 소중한 지식 자산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의료 데이터가 병원의 자산이기 이전에, 환자의 삶과 고통, 그리고 치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민감한 정보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데이터의 활용은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 환자의 권리와 자율성 존중이라는 대원칙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좋은 AI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의료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바른 태도와 책임 있는 ‘AI 거버넌스’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AI 도입 여부는 성능이나 효율성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생명 존중과 환자 안전에 기여하는지, 차별은 없는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AI 개발에 활용된 데이터와 지식의 성과가 특정 기관의 이익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와 환자에게 공정하게 환원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 가장 스마트한 병원은 ‘가장 인간적인 병원’
스마트병원의 성공은 화려한 기술 목록이나 도입된 장비의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에서 덜 기다리고, 덜 불안해하며, 더 정확한 설명을 듣고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성과다.
의료진이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본래의 전문성에 집중하고, 간호사가 기록 업무보다 환자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혁신이다.
미래의 병원은 더 이상 물리적인 건물 안에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환자의 가정과 모바일 기기, 지역사회, 연구 플랫폼, 그리고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가 모두 병원의 확장된 공간이 될 것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생명존중과 책임 있는 AI를 결합한 미래 의료의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산업계,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와도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다.
가장 스마트한 병원은 가장 자동화된 병원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병원’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명은 더욱 존중받아야 하고,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환자의 존엄은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AI가 정교해질수록 의료진의 책임감과 따뜻한 돌봄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AI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며,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환자와 의료진, 즉 ‘사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