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노년의 삶과 집, 그 안에 미래가 있었다”

건보공단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체험으로 배우는 존엄한 나이듦의 기술’

2025-11-07     정윤식 기자
정윤식 병원신문 취재기자.

[병원신문=정윤식 기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달랐다.

따뜻한 조명 아래 반듯하게 놓인 전동침대, 욕창예방 매트리스, 자동으로 높이가 조절되는 싱크대와 식탁, 말을 걸면 대답하는 인공지능(AI) 로봇, 각종 지팡이, 다양한 형태의 휠체어, 요실금 팬티, 보청기, 목욕의사, 이동변기, 이동욕조 등.

그 순간 ‘노년의 삶’이라는 말이 막연한 단어가 아니라, 바로 눈앞의 ‘현실 가능한 기술’로 다가왔다.

이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

2022년 11월에 문을 연 이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는 보험자인 건보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국내 복지용구 실증·체험 복합공간이다.

비슷한 형태의 공간은 성남산업진흥원의 성남시니어산업혁신센터 하나밖에 없기에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는 더욱 특별하다.

기자는 최근 이곳을 직접 찾아가 전시관, 체험관, 연구시설 등을 둘러보며 ‘내가 살고 있던 집과 동네에서 존엄하게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봤다.
 

2층 전시관, “복지용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배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 입구. ⓒ병원신문.

건물 2층에는 정갈한 안내판 위로 ‘전시체험관’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넓고 밝은 2층 전시관은 따뜻한 우드톤과 은은한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다.

관람객이 긴장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 동선이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복지용구 335종(급여 182종, 비급여 153종)을 비롯해 장애인 보조기기 43종 등 총 378개의 제품이 구역별로 전시돼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는 ‘경증·중등도·중증’로 전시관이 구분돼 있다. ⓒ병원신문.

신체 상태에 따라 ‘경증·중등도·중증’으로 구분된 전시존은 마치 한 사람의 노년기를 따라가는 시간의 흐름처럼 구성돼 있다.

손잡이가 달린 보행기, 휠체어, 지팡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세면대와 전동침대까지.

기술이 사람의 손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탱해 주는 도구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전시장 한 쪽에서는 ‘지역우수제품존’이 이목을 사로잡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 전시장에 있는 복지용구들. ⓒ병원신문.

강원지역에서 개발된 혁신적 복지용구와 IoT·AI 기술이 결합된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그중 음성인식으로 작동하는 욕실 안전장치와 노인과 실제 대화까지 가능한 인형들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미 이곳은 단순히 어르신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 돌봄인, 관련 학과 학생, 그리고 언젠가는 나이가 들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복지용구’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배려의 언어’처럼 느껴진 것이다.
 

3층 체험관, “나의 30년 후를 만나는 공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의 스마트홈 체험존. ⓒ병원신문.

계단을 올라 3층 문을 여니, 미래의 주거 모델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은 ‘스마트홈 체험존’과 ‘주거생활 체험존’, ‘노인생애체험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스마트홈 체험존’에는 각종 첨단 기술이 적용된 생활공간이 존재했다.

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해 자동으로 불을 켜고, 높이가 조절되는 식탁과 싱크대가 어르신의 몸에 맞게 부드럽게 내려온다.

생활 속에서 기술이 불편을 없애고 인간의 ‘독립’을 지켜주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 전시장에 있는 다양한 복지용구들. ⓒ병원신문.

‘주거생활 체험존’에서는 거실, 침실, 욕실 등 실제 가정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제품이 어떻게 배치되고 작동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공간에서 직접 체험하다 보니 ‘노인이 되면 이런 부분이 어려워지는구나’라는 현실감이 확 와 닿았다.

어르신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 수도 있으나, 신혼부부가 앞으로의 행복을 만들어갈 나만의 집이 꾸며진 ‘모델하우스’ 같기도 했다.

그리고 체험관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공간인 ‘노인생애체험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의 하이라이트인 노인생애체험존. 기자는 직접 노인체험복과 노인체험안경을 착용하고 다양한 장애물을 지나가봤다. ⓒ병원신문.

관절 움직임을 제한하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노인체험복’을 비롯해 망막색소변증, 황반퇴화, 백내장, 녹내장, 당뇨성망막증 등 노인의 시야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노인체험안경’을 착용한 채로 계단을 올라가거나 배수로, 신호등, 횡단보도, 자갈길 등을 걸어 보면 일상 속 작은 경사조차 거대한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자갈길을 걷다가 문득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런 길을 매일 지나셨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친 것은 왜일까.

돌봄의 의미가 가슴 깊이 다가온 순간이었고,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공간들이 어르신에게는 위험과 두려움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체험관이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감 교육의 장’임을 상기 시켜줬다.
 

4층 연구센터, “실증과 데이터로 좋은 제품 가려내기”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 전시장에 있는 다양한 복지용구들. ⓒ병원신문.

4층은 연구소 분위기가 물씬 났다.

복지용구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시험하는 시험검사실, 사용성평가를 담당하는 평가실이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만능재료시험기, 낙하충격시험기, 내구성시험기 등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장비가 쉼 없이 작동하며 복지용구의 품질을 검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에서 연구진이 복지용구 테스트를 하고 있는 모습. ⓒ병원신문.

이곳의 연구원들은 실사용자의 의견을 연구 데이터로 활용한다.

아울러 전시체험관을 찾은 방문객의 설문 결과가 연구팀에 전달돼 제품 개선과 급여 적정성 검토에 반영되기도 한다.

즉, 복지용구의 실사용자가 곧 연구의 출발점인 만큼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정책에 적용하고 관련 산업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이 바로 4층 연구소였던 것이다.
 

‘사람’과 ‘기술’, 그 가운데 놓인 ‘존엄’의 교차점

짧은 취재였지만, 기자는 이곳에서 ‘복지용구’의 진짜 모습과 의미를 처음으로 자세하게 관찰하고 경험했다.

이곳에서 전시되고 시험받는 모든 제품은 결국 ‘한 사람의 존엄한 일상’을 위한 도구다.

누군가의 손잡이가 되고, 다른 누군가의 휠체어가 되며, 때로는 가족의 마음이 되어준다.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는 단지 기술과 산업을 위한 공간을 넘어 우리 모두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체험하는 장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고령화친화센터 전시장에 있는 다양한 복지용구들. ⓒ병원신문.

집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한 한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공의 약속이 건강보험고령친화센터에서 펼쳐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어르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라는 표현은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나에게 스스로 보내는 메시지다.

복지용구를 통해 어르신의 삶을 이해하고, 직접 체험을 통해 공감하는 일.

그것이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존엄한 나이듦의 기술’이다.

소중하고 재미있는, 무엇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