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제 ‘환산지수협상’이라 부르는 거 어때요?
올해도 어김없이 수가협상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통상 수가협상은 매년 5월 초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공급자 단체장들과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수가협상에 임하는 공급자 단체들의 준비운동(분석·예측)은 4월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고, 건보공단과 공급자 단체들의 사전 간담회는 4월 이전부터 이미 몇 차례 이뤄졌다.
즉, 4월부터 수가협상 시즌이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의원 유형 협상단인 대한개원의협의회가 환산지수 연구용역 책임교수와 건보공단 급여관리실 관계자를 초청해 공청회를 여는 등 예년보다 빠르게 군불을 지핀 분위기다.
대개협이 지난 3월 22일에 주최한 수가협상 개선방안 공청회 얘기를 먼저 해보면,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와 급여관리실이 소통과 배려를 위해 직접 참여했다는 것 외에는 몇 년 동안 기자로서 수가협상을 취재하며 들었던 얘기들의 반복이었다.
그만큼 유형별로 수가협상이 진행된 2007년 이후 드러난 각종 문제점과 의료계의 불만은 크게 변한 것이 없고 달라진 것도 없다는 의미다.
물론, 예전보다 건보공단이 의료계에 제공하는 자료의 종류와 양, 만남의 횟수 정도는 훨씬 나아졌다고 하나 수가협상의 본질인 ‘협상’만 두고 본다면 의료계의 불만은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3년 전에도, 1년 전에도 동일했다.
솔직히 말해서 매년 5월에 진행되는 수가협상은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존재 자체도 모르고, 주요 언론사들도 관심이 없는 건보공단과 의료계만의 이벤트다.
그나마 보건의료 전문지가 보이는 '관심 한스푼'이 전부다.
100조 원에 달하는 전체 요양급여비 중 극히 일부인 1조 원 전후를 다루는 게 바로 수가협상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나 있다.
한 마디로 의료계와 건보공단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그런 수가협상인데 매년 의료계와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서로 으르렁거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가 쌓여 서로 불신의 크기가 커지고 감정만 상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게 수가협상이 돼 버렸다.
수가협상이라는 명칭에서 주는 오해도 있다.
수가협상이라고는 하나 건보공단이 상견례나 보도자료 등에서 사용하는 공식 표현은 ‘요양급여비용계약’이다.
수가협상이든 요양급여비용계약이든 용어에서 오는 어감 때문에 적절한 인상률을 받아내지 못하면 마치 한 해 의료계 농사가 모두 망하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는 직접 취재를 다니는 기자들도 흔하게 오해하고 헷갈리는 요소다.
수가협상의 개념과 방식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돼버린 ‘수가협상’의 ‘수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안타깝게도 현재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지 못했다.
지난해 윤석준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재정소위 1차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양급여비용계약은 흔히 수가협상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수가를 구성하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 중 환산지수에 대한 협상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환산지수협상 또는 환산지수계약이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전체 수가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협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급자단체 회원들이 과도하게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윤석준 위원장이 한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수가협상이라는 표현이 어느샌가 입에 붙은 의료계는 말할 것도 없고, 건보공단조차, 기자들마저도 오히려 환산지수협상이라는 용어가 어색할 정도다.
윤석준 교수의 ‘환산지수협상’ 언급 이후 필자를 포함해 일부 언론사의 기자들이 환산지수협상이라는 단어를 기사 제목이나 본문에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수와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이번 대개협 수가협상 공청회에서 김진현 교수도 “수가협상은 매년 환산지수 계약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가협상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환산지수를 계약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면, 당장 올해부터라도 공식적인 명칭 사용을 변경해 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단어 하나가 주는 느낌, 문장 하나에서 느껴지는 어감, 문단 하나에서 불거지는 오해는 때로 사실과 다른 문제와 의도치 못한 갈등을 일으킨다.
의료계는 특히 그런 경험이 많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아니긴 하나 과거 ‘뇌전증’을 ‘간질’이라 불렀던 사례, 현재 ‘치매’라는 용어가 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인지증’으로 바꾸려는 움직임 등이 왜 있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면 쉽다.
5월 초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과 공급자 단체장들과의 상견례 때부터 현수막에 ‘요양급여비용계약’을 지우고 ‘환산지수협상’을 적어 놓는다면?
이를 계기로 이제 우리 ‘수가협상’을 ‘환산지수협상’이라 부르는 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