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 창립 65주년] 지방의료원연합회가 22대 국회에 바란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인천광역시의료원장) 지방의료원 강화가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의 초석 전공의 업무 거부 사태 커다란 보건의료 위기 빙산의 일각 지역 2차병원은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거점병원 역할 해야 ‘독립채산제’하 ‘책임경영제’ 허황, ‘총액예산제’전환 필요 지역거점 공공병원 안정적 임무 수행은 정책 성과 중요 지표
■ 들어가며
22대 국회가 개원하였다.
의대 증원에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4개월이 지나도록 수련병원이 정상화하지 못하고, 교수들과 인력들은 지쳐가고 있다.
건강을 잃고 의사에 의존하여 치유를 기원하던 환자들은 혹시라도 치료의 시기를 놓칠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진행 중인 전공의 업무 거부 사태는 커다란 보건의료 위기에서 보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필수의료의 붕괴, 지역 보건의료의 붕괴, 취약계층의 건강 안전망 붕괴가 눈앞에 닥쳐있다.
그간 한국의 보건의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많은 전문가의 지적과 분석이 있었고 정부는 이를 해소하고자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왔다.
부실한 의료전달체계는 모든 의료기관이 같은 환자를 두고 경쟁하게 했다.
고난도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해도 부족한 세부 전문의들이 동네 병의원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외래 진료에 몰두하느라, 정작 입원한 중증 환자는 전공의에게 맡겨 두어 막상 교수는 외래전담 전문의가 되었다.
지역의 2차 병원은 진료권 내에서 발생하는 응급환자와 입원·수술이 필요한 중등증 이하 환자 대부분을 감당하는 거점병원이어야 한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가 쏠리니 지방·중소병원의 병상은 비어있다.
■ 대한민국 의료의 문제는 부족한 공공성
공공보건의료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국제적인 의미의 공공보건의료는 정부가 하는 공중보건사업이나 정책을 위한 사업 등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이 심한 민간의료 중심의 상업적이고 영리적인 보건 의료체계가 가지는 폐해를 개선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괄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보건의료재난이나 의료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은 물론이고, 법률에 정의하듯 지역·분야·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사회정의의 구현까지 포함한다.
즉, 한국의 보건의료가 가진 모든 부분의 병폐를 극복하고 공공성을 높이고자 하는 보건의료적 노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 공공의료와 공공병원
정규군의 수준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듯,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준이 국가 보건의료의 수준을 나타낸다.
한국에서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전체의 5.2% 남짓이고 병상 수로 보아도 8.8%(2023년 기준)에 머물며 이마저 계속 떨어지고 있어 평균 50%가 넘은 다른 선진국들과 매우 큰 격차를 보이고있다.
■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현실과 문제
1)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사업
법률에 명시한 지방의료원의 임무는 ①지역주민의 진료사업 ②‘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의 공공보건의료사업(보건의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 및 분야에 대한 의료 공급에 관한 사업, 보건의료 보장이 취약한 계층에 대한 의료 공급에 관한 사업, 발생 규모, 심각성 등의 사유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감염병과 비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재난으로 인한 환자의 진료 등 관리, 건강 증진, 보건교육에 관한 사업, 그 밖에 국가가 관리할 필요가 있는 보건의료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업) ③ 의료인ㆍ의료기사 및 지역주민의 보건교육사업 ④ 의료지식과 치료기술의 보급 등에 관한 사항 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보건의료 시책의 수행 ⑥ 감염병에 관한 각종 사업의 지원 ⑦ 그 밖에 보건복지부 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보건의료사업의 수행 및 관리 등이다.
매우 광범위하며, 상당한 규모,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현실에서 지방의료원은 한계가 많다.
2)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부족한 규모, 인력
정부가 세운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에 70개의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17곳의 국립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한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 책임의료기관 네크워크를 통해 지역 필수의료의 근간을 만들기로 하였다.
70곳 중진료권마다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선정하여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체계를 제공하는 보건의료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삼고, 지역 의료기관과 지역 돌봄 기반시설까지 연결하여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고 연계와 협력을 통한 보건의료 안전망의 중심 기관으로서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사업을 규정했다.
하지만 지방의료원의 규모는 종합병원 필수기능 유지의 최소 단위라 할 300병상이 넘는 곳이 전국에 7곳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정신, 재활 등 만성환자 병상을 제외한다면 서울에 있는 한 곳 정도만이 제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인력에 있어서는 더더욱 문제다.
팬데믹 이후 급격히 부족해진 전문의의 구인난은 유연한 경영행태 전환이 불가능한 공공병원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다.
202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미 부족한 전문의 수만 지역거점병원 41곳이 1,000명에 달한다고 분석되었다.
3) 공공적 운영과 독립채산제
상기한 지방의료원 사업 중 수익이 발생하는 곳은 주민의 진료사업 한 가지로 볼 수 있다.
공공병원도 행위별 수가를 근간으로 하는 건강보험 지불보상체계에 따라 의료 수입이 발생한다.
지역 공공병원이 병원 유지가 가능한 수익을 올리기 매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구수가 적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설치되어 내원 환자 수가 부족한 곳이 많다.
둘째, 이미 원가 이하로 책정되어 비급여 진료 없이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보험수가 구조지만 공공병원이 비급여 진료를 늘리기는 어렵고, 그럴 수도 없다.
셋째, 대도시 병원조차 수익이 적은 사회적 입원환자(취약계층)를 많이 담당한다.
넷째, 지방의료원이 수행하는 대부분 공공보건의료 사업이 투입하는 인건비 중심의 사업비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는 수익에 적자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많다.
다섯째, 공공기관은 수익에 집중하고 비용을 줄이는 시장경영행태를 적용하기 어렵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대다수 지역공공병원은 심각한 재정 부족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2년여 간 감염병 환자 중심으로 운영한 이후 줄어든 일반 환자 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데다, 급격히 늘어난 의사 인건비를 비롯한 관리운영비 증가는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들 정도의 심각한 재정난에 처해있는 형편이다.
4) 불합리한 운영지침
지역공공병원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비영리단체(대한적십자사)가 설립하여 운영한다.
병원의 운영에 관한 일반적인 법률적 규정 이외에 세부적인 지침은 지방공기업이나 행정기관의 운영에 관한 규정이나 공무원에 적용되는 지침에 따르고 있다.
병원의 운영은 행정기관이나 기업의 운영과 매우 다르다.
인력 구성과 사업의 범위가 매우 복잡하여 단순한 규정과 지침보다는 경영에서 유연성이 중요하며, 기관장의 역량 또한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2~3년 단위로 재공모하는 기관장 임명체계로 병원 발전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기는 불가능하다. 공기업과 공무원 운영 지침으로 병원의 운영을 제한하는 것은 손발을 묶고 달리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 공공병원을 위한 정책제언
1) 재정 원칙
민간병원과 같은 건강보험 수가를 기준으로, 수지를 맞출 것을 요구받는 구조는 공공병원을 공공적으로 운영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겨우겨우 수지 균형에 도달했던 절반가량의 공공병원들마저 팬데믹 이후 심각안 재정난에 빠져있어,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
과거 정부 직영 형태(시립, 도립병원 등)에서 지방공사로, 이후 2005년 의료법인으로 전환시켜온 역사는 공공병원을 민간병원과 같은 위치로 끌어 내리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다시 국가의 역할을 키워야 할 때다.
수익을 올려야 운영되는 ‘독립채산제’ 하의 ‘책임경영제’는 공공병원의 미션과 비전을 가지지 못하게 하거나 허황한 소리로 들리게 하는 모순이 있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원 이후 제안된 ‘공익적 적자’의 보전이 복잡한 산출방식과 분류의 어려움으로 거의 무용화된 경험에 비추어 이제는 ‘총액예산제’ 기반으로 재정정책을 과감히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2) 규모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지역 공공병원의 규모는 필수의료 제공 가능한 최소한의 기준인, 급성기 병상으로써 대도시는 500병상, 중소도시 거점병원은 300병상을 갖추어야 한다.
전문의 인력은 대도시 100명, 중소도시 60명 이상을 갖추어야 지역 필수의료에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
3) 인력
의료인력, 특히 의사인력 부족이 현재 진행 중인 지역필수의료제공의 핵심적 장해가 되었고, 정부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정책을 만들고 있다.
민간의료 중심의 의료체계가 만든 지역의료 붕괴를 민간병원과 같은 방식의 인력체계로 해결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는 중장기 과제를 추진함과 더불어 국립대학교 등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공공의료 인력공급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어렵게 만들었던 ‘공공임상교수제’ 사업조차 법률개정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체계적인 의료인력 공급체계를 갖추는 것은 지역 필수의료체계 공급의 핵심을 이룬다.
■ 마무리하며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제공은 정부의 큰 목표이다.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경제성장도 행복한 시민의 삶이 없다면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합계출산율 0.65, 하루 40명에 육박하는 자살자 수, 늘고만 있는 지역, 분야, 계층간 사회적 격차의 근간에 공공성이 부족한 우리 의료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안정적 임무 수행은 정부 정책의 성과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 담긴 다양한 정책이 꼭 이루어져 지역주민의 삶이 개선되고,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동네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한가득 울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