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엘프레데 옐리네크의 작품세계

2004-10-08     윤종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엘프레데 옐리네크(57)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여성작가.

스웨덴 한림원이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 비범한 언어적인 열정으로 사회의 진부한 사상과 행동, 그리고 그것에 복종하는 권력의 불합리성을 잘 보여줬다"고 노벨상 선정이유를 밝혔듯 기성권위와 여성차별 등의 문제를 실험적 언어로 작품에 담아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강권으로 스파르타식 음악공부를 했던 옐리네크는 음악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이를 포기하고 독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하며 작가로 돌아섰다.

평소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인데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글은 외설적으로 느껴질 만큼 도발적이고 과격해 작가와 작품을 연결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

그는 국내 번역된 "피아노 치는 여자"(문학동네 刊)에서 여주인공이 남자친구를 불러 갖은 방법으로 유혹한 다음 남자의 성적 요구를 뿌리쳐 정신적으로 시달리게 만드는 등 가학-피학적 요소를 작품속에 자주 드러내 왔다.

이병애(67) 전 이화여대 독문학과 교수는 "옐리네크는 1960년대 중반부터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면서 "그의 작품은 1980년대 이후 서구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재평가돼 "옐리네크 다시 읽기" 붐이 일었다"고 말했다.

그가 1970년대 여성운동가들로부터 외면당했던 것은 작품이 단순히 페미니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경제 비판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 무엇 보다 여성들이 단순히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희생물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당시 여성운동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 자신들의 우매함과 천박함이 오히려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해 여성운동가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옐리네크는 1986년 12월 하인리히 뵐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주간지가 "옐리네크의 문학적 재능은 수준이하"라는 기사를 쓴지 불과 몇달 후내려진 결정이었다. 독일에서 그의 문학성이 인정받은 반면 조국 오스트리아에서는 오히려 그의 야당적인 비판의식 때문에 "조국을 욕되게 하는 배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병애 전 교수는 "옐리네크는 괴테, 쉴러, 릴케, 횔더린 등의 유명한 작품 가운데 일부 단어를 바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거나, 유력 정치인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패러디해 모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언어구사력과 정치비판적 참여의식으로 인해 "슈피겔"지는 그를 "오스트리아의 가장 유명해진, 가장 미움받는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연극작품들도 조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상연되지 못하고 독일에서 초연의 기회를 가졌으며, 그 자신도 오스트리아를 위해서는 문학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독일의 새로운 여성 운동은 프랑스의 여성 언어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루체 일리가레이, 엘렌 식수 등이 프로이트와 라캉 및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논리를 적용하여 새롭게 발전시킨 페미니즘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세계의 여성학자들은 이들의 이론에 집중했고,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의 여성 운동가들이 발전시킨 "젠더 스터디(Gender Studies)" 연구 방향에 현대 독일 페미니즘 운동이 영향을 받으면서 옐리네크는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독일어권 여성작가로 주목받 았다.

그는 1983년 "피아노 치는 여자"와 1989년 "욕망"으로 독일어권 문학 평론계에서 주목을 끌었는데, 두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는 남녀간의 성에 관련된 대담하고 노골적인 묘사나 표현은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적지않은 독자들에게는 혐오감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특히 "욕망"은 "문학인가 외설인가"하는 시비에 휩싸이기까지 했는데, 옐리네크는 이 작품이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시키는 남성 포르노에 대항하고자 의도적으로 시도한 안티포르노"라고 단호히 항변했다.

이병애 전 교수는 "옐리네크의 글쓰기는 롤랑 바르트의 "일상의 신화"에 근거한"신화 해체 작업" 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방법적으로는 첫째 고전적인 기존 작가들의 불후의 명문들을 인용하고 그 원래의 의미를 해체하고 기존 언어가 가진 권위와 품위 속에 담긴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고 시도했고, 둘째 콜라주적 기법과 언어 유희적 기법으로서 문자를 바꾸어 유사한 단어군들을 조성해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전도시키는데 이 또한 신화 파괴를 겨냥한 이데올로기 해체 작업의 일부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희경(42) 성균관대 강사는 "옐리네크는 너무 도발적인 글들을 써왔기 때문에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의외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때 옐리네크에 심취했다는 충남대 박광자(59) 교수는 "오스트리아 작가라면 한트케가 노벨상을 수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면서 "그의 문학은 쇼킹(shocking.충격주기)과 새타이어(satire.풍자)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정통적인 글쓰기에는 벗어나 있으며, 젊었을 때 반항적인 행동 등으로 요란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강창구(56) 충남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옐리네크는 최근 오스트리아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자 자신의 작품을 자국에서 공연하지못하게 할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소유 자"라며 "현대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워 여성을 성적으 로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