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응급실은 한국의료의 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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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응급실은 한국의료의 한 단면
  • 병원신문
  • 승인 2012.11.05 16: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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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문병원협의회장 정흥태
본지 논설위원(부민병원 이사장)
정흥태 대한전문병원협의회장

어떤 원리가 부분적으로 성립한다 할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성립한다고 확대 추론함으로써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일컫는 '구성의 오류'이다.

예를 들어 한 배추농가의 수확량이 늘면 그 농가의 소득도 늘겠지만 이것으로 모든 농가의 배추 수확량이 증대되면 모든 농가의 소득 또한 늘어날 것으로 추론할 수는 없다. 가격폭락으로 인해 전체 농가의 소득이 감소하게 될 테니까.

KTX로 수도권과 지방의 교류가 활발해져 지방경제가 활성화될 것을 기대했지만 지방 소비계층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오히려 지방 경제가 어려워진 현상도 같은 이치이다.

구성의 오류는 의료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의약분업, 간호등급제, 의료인력 부족 개선안 등의 중요한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그 제도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유무를 포함한 전체적인 문제점 검토 없이 협소한 시각으로 부분적 검토만을 거치고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결국 의료소비자인 국민이 도리어 손해를 보게 됐다.

진료현장에서 직접 적용 가능한 법제도 만들어야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시행했는데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를 응급실 근무의사가 1차적으로 진료한 후, 타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의 취지는 야간 및 공휴일에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전문의로부터 보다 빠르고 적절한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료기관과 국민 모두에게 혼란을 야기 시켰고 실효성 또한 적어 일부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는 지정취소를 신청하는 등의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이에 병원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에서는 이 제도가 이상적 취지를 가지고는 있으나 현실을 등한시한 탁상행정이란 비판을 제기해왔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인력의 부족과 수급불균형이다. 전국적으로 의사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응급의료기관 지정 기준보다도 더욱 강화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도는 분명 문제다.

시설, 장비, 인력 등 법정 지정기준을 충족하여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별도로 모든 진료과목마다 1인 이상의 당직 전문의를 두도록 개정하는 것은 응급실의 운영을 힘들게 만들 뿐이며 특히 전문의 인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지방 중소병원에게는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2010년 기준, 전국 지역응급의료기관 326개소 중 응급실 전담의사가 부족한 기관이 무려 179개소에 이른다. 이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의사구인난이 그 주된 요인으로, 특히 농어촌 지역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등 전문의가 2명 이하인 의료기관이 60% 이상인 것으로 조사돼 과연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이 시행될 때 의료현장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다.

이제 정부는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재점검과 기관별, 지역별 비상진료체계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역응급의료센터는 필수진료과목에 한해 당직전문의를 운영하고 농어촌 군 소재 지역응급의료기관의 경우엔 당직전문의 운영을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응급의료 관련 저수가 문제의 개선이 절실하다. 응급실 운영은 수요예측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요와 투입자원간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아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지니고 있다(원가보전율 68.8%).

여기에 덧붙여 응급환자의 대다수는 대형병원으로 몰려 지방중소병원 응급실은 수익이 악화되고 있으며 진료과의 당직확대에 따른 비상진료대기 수당 지급으로 인해 경영부담도 심화되고 있다.

응급의료는 일반 의료서비스와는 달리 정부가 적정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을 책임져야 할 공공성 높은 영역이다. 그러나 민간의료기관이 응급의료 제공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제도개선 및 수가인상 등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중증외상센터 지원도 중요하지만 지방중소병원의 응급의료기관 지원금 확대도 반드시 필요하고 응급진료권 설정과 응급의료자원 재배치도 지자체와 함께 자율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응급실은 대한민국 의료의 모든 문제 함축

사실 우리나라의 응급실은 대한민국 의료의 모든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현장이다. 구조적인 저수가 문제를 비롯해 건강보험재정 악화, 의사·간호사·약사 등 보건의료인력 수급불균형, 의료양극화(수도권병원 vs. 지방병원, 대형병원 vs. 중소병원, 진료과별) 문제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응급의료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의 기능 재정립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응급의료기관에 전문의 당직제도를 갖추게 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

정부는 국민이 응급의료제도를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병원인들에게 주취자와 같은 응급실 폭력사태 등으로 자부심과 사명감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정부는 응급의료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해 당직전문의제도 뿐만 아니라 응급의료 전달체계 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논의한다고 한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 의료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상호 존중하는 동시에 병원의 역할을 새로이 재조명해보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구성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현실성과 이상성을 고루 갖춘 대한민국 응급의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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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rick 2015-03-08 08:26:09
You are not right. Write to me in PM.

Randy 2015-04-25 05:42:45
The individuals who disagree with the central principles shall completely comprehend   where you are going with the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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