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공공의료 확충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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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공공의료 확충안 우려
  • 박현
  • 승인 2005.05.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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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료정책연구실 허대석 교수
보건복지부 주최로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안"에 대한 공청회가 2005년 5월25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됐다.

국민건강권을 보호하겠다는 목표 하에 공공보건 의료체계에 보건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도록 개편하겠다는 추진 방향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관계부처 대책 수립팀"이 작성한 구체적인 안들을 살펴보면 본래의 취지와 달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의료의 이원화"를 복지부가 선도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영리법인허용" 등의 정책은 의료시장 개방 등 정부의 의료산업화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의료영리법인은 수익모델을 전제로 지속적인 자본유치가 가능하므로 첨단의료를 짧은 시간 내에 수용할 수 있어 한국 내에서 선진 의료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반면, 장기적인 재원조달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행정적인 경직성을 피할 수 없는 공공의료체계는 하향평준화로 치달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화 추세에서 의료의 산업화는 고려돼야 하는 사항이나 이에 대비해 정부가 발표한 공공의료정책은 민간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에 대해 이분법적인 접근을 함으로써, 필수적인 의료행위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선택적인 의료행위는 민간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도록 유도해 장기적으로 "의료의 이원화"가 우려된다.

이는 국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또 하나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의약분업을 직능분업이 아닌 약국과 병원으로 이원화(기관 분업)시켜 결국 환자들의 불편을 초래한 것과 비견된다.

그뿐 아니라 공공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의료의 질이 민간의료기관보다 낮아질 경우 국민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조장함으로써,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의료행위 중 "필수적"인 부분은 시행되는 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이든 공공의료기관이든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국가가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의료의 공공성강화"의 제대로 된 접근 방향이다.

또 공공의료기관도 끊임없이 새로운 의료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의료제도 전체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2."공공의료"의 개념에 대한 혼선

정부가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을 위해 4조3천억 원을 투자하는 것을 근간으로 짜여진 계획안을 살펴보면 "병상기준 공공의료"의 수치에 집착해 "공공의료"는 공공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의료만으로 한정해 대책을 수립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에서 "공공의료"를 시행한다면 시립병원에서 하는 성형수술은 공공의료이고, 사립대학병원에서 시행되는 급성충수돌기염(맹장염)에 대한 응급수술은 공공의료가 아니라고 확대 해석되어, 의료전달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모든 공교육이 정부에서 건립한 국공립 교육기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립 교육기관에서도 "공교육"을 받을 수 있듯이 공공의료도 민간설립의 의료기관에서 받도록 하는 것이 보건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된다.

급성병상은 OECD국가의 평균보다 과잉으로 투자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구 1천명당 한국 5.2병상, OECD평균 3.1 병상), 이 투자의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 소유의 병상 수를 현재의 18%에서 30%가 될 때까지 4조원 이상의 국가재원을 투자하겠다는 발상은 실제 국민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중복투자 일수 밖에 없다.

특히 국가중앙의료원을 추가로 설립하는 등의 계획은 보건의료체계를 개편하는 문제를 소프트웨어 개념에서 접근하지 않고 하드웨어를 추가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국고만 낭비될 뿐이다.

3.보건복지부의 국립대학병원 운영 참여의 부적절성

복지부가 제시한 자료집에 의하면 복지부가 운영에 직접 참여했던 공공의료기관(국립의료원 등)은 비효율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이 같은 공공의료기관의 대표격인 국립의료원에 국고를 투자해 "국가중앙의료원"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안을 발표하고 있다.

"국가중앙의료원"을 통해 "표준진료모형"과 같은 국가정책을 짜나가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같은 목적으로 설립된 일산공단병원이 아직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설득력이 없는 대안이다.

또 다른 정부의 안에 의하면 보건복지부가 서울대학교병원과 같은 국립대학병원의 운영에 새로이 참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의료기관평가에서 1위의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서울대학교 병원의 운영을 복지부가 맡겠다는 접근은 경쟁력 있는 조직을 선택한 뒤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국가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국가경쟁력 제고 방안과는 상치된 것이다.

공공의료체계에 대학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국의 의료제도에서는 대학병원이 국가의료정책 및 의학연구정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함께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의료인력도 육성하고, 세계와 경쟁하는 연구력도 함께 키우고 있다.

복지부가 제시한 성공적인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립암센터가 국가암관리사업과 암정복연구사업을 주관하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운영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정부의 공공의료확충정책안에서는 국립대학병원이 공공의료체계(보건소 관리 등)의 진료업무를 지원하는 의무만 나열되어 있고, 대학병원으로서의 역할인 차세대 의료인력의 교육 및 연구기능의 향상을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더욱이 모순된 논리는 공공기능을 수행하면서 수익성을 평가해 차등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양질의 의료인력을 육성하고 경쟁력 있는 생명과학 연구를 수행해온 국립의과대학 및 국립대학병원 본연의 고유기능자체를 부정하는 발상으로 국가의 의료 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공의료"는 중요하다. 국민 모두가 필수의료를 제한 없이 받을 수 있게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의무이다. 의료개방에 대비하고 국민건강권을 향상시키는 대책이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을 양분화시키고 공공의료기관의 병상을 늘리는 것일 수는 없다.

보건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있도록 공공의료체계를 개편하려면 민간의료기관, 공공의료기관 구별 없이 우리나라 의료자원을 전체로 보고 운영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이제는 공공의료기관의 설비투자와 병상만 늘리면 공공의료가 발전된다는 과거의 안일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서울대 의료정책연구실 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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