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성상철 원장의 바람직한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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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성상철 원장의 바람직한 노사관계
  • 박현
  • 승인 2004.08.17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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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일이라는 장기간의 파업 끝에 마침내 올해 노사교섭이 타결되었습니다.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산별교섭 원년으로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노사가 정말 어렵게 자율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지부에서만 산별 합의안을 거부하며 무려 44일이라는 오랜 기간 파업을 지속하여 환자분들께 많은 불편을 끼쳐 드린 점은 커다란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 공공병원으로서, 어떤 경우에라도 환자진료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명분이 어떻든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파업을 장기간 지속한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서울대병원장으로서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올해의 임단협은 엄청난 물적 정신적 손실을 초래했지만 상생의 선진 노사문화가 정착되는 기회로서 소중한 경험으로 승화되었으면 합니다.

2.올해는 산별교섭이라는 새로운 형태에 의하여 교섭이 이루어졌습니다.
교섭 과정과 합의사항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십시오.

=당초 서울대병원 지부교섭은 4월 13일부터 10여 차례 진행됐으나 노동조합 지부에서 산별 5대 요구안에 대해서는 지부교섭에서 논의할 수 없으므로 산별 참여를 강요하다시피 하여 국립대병원은 늦게 산별교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5월 25일 노동조합에서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하고, 6월 1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으나 다행히 6월 23일 산별 잠정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지부는 이를 거부하며 파업을 지속하여 44일만에 지부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산별교섭에서는 산별 전문과,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 이에 따른 인력충원 방안, 노동법 개정에 따른 휴가제도 개선과 보전 방안, 비정규직 처우개선, 의료 공공성, 임금인상 등에 대해 합의하였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산별합의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주내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했습니다.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선진 노사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노동조합에서도 파업을 결정할 경우 더욱 신중하고 책임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유래가 없는 장기간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파업 당시의 상황과 문제점, 그리고 현재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입원, 외래 등 병원운영 모든 부문에서 크나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수술의 경우 본원에서는 평일 하루 110-120건을 해왔으나 파업으로 인하여 40-50건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술을 늦출 수 없는 경우에서는 의사와 환자가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입원진료도 크게 축소되어 병상 가동률이 50%대에 머물렀으며, 파업으로 인한 손실규모는 110여억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료시설인 본관 2층 로비를 점거하여 농성을 벌이고, 경영진을 적대시하는 구태의연한 투쟁행태를 보인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는 진료 등 병원 모든 부문에서 정상가동을 위해 전 직원이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환자중심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가 심기일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물적 인적 손실은 병원이 오랫동안 안고 가야할 부채로 남을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최고병원으로서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된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기파업에 따라 깊어진 직원간의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 마련이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4.올해 처음 시행된 산별교섭에 대하여 평가해 주십시오.

=당초 산별교섭이라는 새로운 교섭형태가 병원계에는 적합하지 않은 교섭방식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같은 업종 간 근무형태나 환경 등이 유사한 경우라면 몰라도, 병원계와 같이 설립목적, 지역, 규모 등이 천차만별이고 임금, 근로조건 등의 수준 차이가 큰 경우에는 산별교섭을 통한 합의안 도출이 어려워, 바람직한 교섭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산별교섭이라는 틀을 만들어내고, 어렵게 합의를 도출해낸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계와 학계 등에서도 진정한 산별교섭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몇몇 노동조합 지부에서 산별합의 자체를 부정하고 파업을 지속하는 바람에 이같은 의미가 반감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우려했던 이중교섭 구조가 됨으로 인하여 과연 향후 산별교섭을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와 같은 교섭행태가 반복된다면 정상적인 산별교섭은 어려워지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5.올해 교섭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할지 말씀해주십시오.

=병원에서의 교섭에는 노사 당사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위치에 환자라는 대상이 교섭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따라서 성실한 교섭을 통해 파업 없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특히 환자에게는 생사기로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병원으로서 존재하는 서울대병원의 경우 파업으로 인하여 환자의 치료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파업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병원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도 파업까지 도달하지 않고 교섭에 합의하여야한다는 당위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올해와 같은 장기간의 파업이 모두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파업은 그 자체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뿐입니다. 파업은 노사 간, 노노 간, 구성원 내의 수직 수평 간의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는 상처뿐인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는 교훈을 얻어야할 것입니다.

올해의 경우 노노 간의 갈등요인이 파업의 장기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자체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할 것입니다.

각 병원에서도 향후 효율적인 교섭을 위한 성실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개별 병원 간 이해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 병원계의 나아갈 방향을 확고하게 정하여, 교섭에 임해야할 것입니다.
특정 병원이 중심이 되고, 대다수의 병원들은 과실을 기대하는 실태는 지양되어야할 것이며, 장기적인 전략부재로 인해 각 병원들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6.향후 바람직한 노사문화가 정립될 수 있도록 당부말씀을 해주십시오.

=노사관계란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원칙에 기반을 두어야함은 자명합니다. 비록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는 양측의 입장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노사 모두가 동반자관계에서 벗어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나친 인식 공격, 과격한 선전선동전략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며, 국민들은 물론 조합원들 조차도 이러한 노사문화에는 이미 식상해 있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매년 노사교섭 시기 마다 되풀이되는 소위 "누워서 침 뱉기" 식의 선언 또는 구호들은 이젠 지양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노동조합 역시 서울대병원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들이 속한 조직을 순간의 목적 달성을 위해 근거 없이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조합도 새로운 사고로 병원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다함께 노력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평소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노사교섭 때에야 해결하려는 경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사관계란 단체교섭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협력하고 상생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급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병원 내부적으로는 중간관리자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허리역할을 하는 중간관리자에게는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역량이 곧 관리역량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따라서 중간관리자는 늘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 요인을 사전에 인지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잠재되어 있는 조직원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발해내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한편으로, 평소 내재되어 있는 조직원간 불만이나 문제점이 노사교섭 시기에 갈등으로 작용하여 분규가 증폭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간관리자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사문제에 대한 확고한 자기철학을 정립하여, 그에 따라 소신 있게 행동함으로써 조직 발전을 꾀하고, 평화적이고 효율적인 노사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해줄 것을 이 기회를 빌어 중간관리자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끝으로 노사교섭이란 노사 양측이 대화의 파트너로서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란 점에서 합리적 대화와 타협을 스스로 찾아내는 성숙한 노사문화가 정립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무쪼록 올해의 노사교섭이 새로운 선진 노사문화 정착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는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노사교섭이 자리잡기를 기대합니다.<박현ㆍhyun@kh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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