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당연지정제 존폐논란 불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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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기관당연지정제 존폐논란 불붙다
  • 정은주
  • 승인 2005.03.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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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차 서울특별시병원회 정기총회 및 제2차 의료포럼
24일 제27차 서울특별시병원회 정기총회에 앞서 "건강보험 요양기관계약제의 쟁점과 정책제안"을 주제로 열린 제2차 의료포럼에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존폐를 놓고 찬반양론이 엇갈렸다.

의료공급자측에선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 반면, 정부측은 공공의료 확충 미흡을 내세워 시기상조론을 폈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존폐문제는 의료시장개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현안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오는 8월 출시될 예정인 생명보험회사의 실손형 보장상품은 병원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을 보험에서 보장해주고 있어 사실상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지정제 같은 건강보험제도의 개선방에 대한 논란이 마무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이날 포럼에서 지정토론자들의 발표내용을 중심으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대한 찬반양론을 살펴봤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돼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논의는 의료서비스의 성격을 공공재로 볼 것인가, 사용재로 볼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한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의료서비스는 사용재이지만 적정한 정도 소비될 가치가 있는 가치재"로 보고 있다. 필수의료서비스의 경우 국민건강과 직결되므로 국가가 소비를 강제화시킬 수 있지만 필수의료서비스의 가치재적 특성과 소득재분배와 관련한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성격을 인정한다 해도 민간소유 요양기관의 건강보험 참여방식을 "강제지정"만 취하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게 정형선 교수의 주장이다.

정형선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민간소유 요양기관의 건강보험 참여방식은 계약 내지 신청지정 방식이 원칙이며, 당연지정제는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법리적으로 볼 때 "지정"이라는 방식은 행정법상 배타적 권리 부여를 위한 행정행위이지만 현행 당연지정방식은 "지정 외"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제계약 방식에서 가능한 요양기관의 배제도 원칙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돼 있어 법리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게 정 교수의 논리적 근거다.

이해당사자인 의료공급자 입장에서 당연지정제를 보면, 이 제도가 의료공급자의 직업선택권을 박탈하고 있고 이로 인해 사유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국민에게는 다양한 의료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하므로 질이 저하되고 의료비 해외유출로 경쟁력을 잃게 되는 점 등을 당연지정제의 위헌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들고 있다.

따라서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제로 전환하자는 게 정형선 교수의 주장이다. 계약의 형식과 내용, 절차 등에 대해선 향후 논의돼야 하지만 일단 계약제 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한 분위기가 형성된 이상 보험자와 공급자 모두 윈-윈의 자세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정형선 교수는 "의료공급자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질적 수준에 대한 객관적 규정을 마련하고 평가방식 및 절차를 정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평가결과를 의료의 질 확보에 연계시키기 위해서도 계약제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단체간의 계약을 통해 적정진료, 청구심사 등의 역할을 상당부분 공급자단체에게 확보시킴으로써 전문가조직의 자율규제를 통한 성숙한 의료관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 교수는 "당연지정제는 의료의 공공성과 보장성이 확보된 후 논의돼야 한다"는 시기상조론에 대해선 "보장성 강화가 계약제의 절대적인 필수전제조건은 아니며, 그 수준이 60%가 돼야 할지 70%가 돼야 할지 등에 대한 기준조차도 자의적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료공급자 입장에서도 비전문가에 의한 간섭과 규제라기보다 같은 전문가집단에 의한 규율을 통해 설명과 납득의 문화를 누릴 수 있으며, 제도참가에 대한 선택성을 확보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풀이했다. 즉 현행 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일방적인 간섭과 규제를 다소 벗어날 수 있으며, 건강보험을 취급할 것인지 여부를 요양기관이 선택할 수 있어 의료기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란 해석이다.

당연지정제 폐지 측면에서 볼 때 병원계도 정형선 교수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날 토의자로 참석한 대한병원협회 홍정룡 보험이사는 "계약은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지지만 공급자와 보험자는 지금까지 대등한 관계에 서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당연지정제 하에서 수가계약은 이미 형평성이 깨진 것으로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당연지정제를 시행하기 위해선 요양기관의 적자를 보전해줘야 하지만 적자보전없이 계약하는 것은 일방적인 정책이며, 앞으로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국가가 주도하는 단일보험공단 하에서 의료공급자가 계약제를 주도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함께 내놨다. 다만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수가계약시 협상테이블에서 다소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요양급여기준이나 각종 산정지침 등 병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부고시로 정하고, 과잉진료와 부당진료 등으로 매도하는 현상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병원계는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홍정룡 이사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요양기관계약제가 시행돼도 의료기관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며 "수가계약시 보험자가 종합병원은 이익을 보고 있으니 수가인상을 할 수 없다는 용역결과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더 이상 잃을 것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요양기관 계약제로 전환할 경우 계약조건에 어긋나는 수준의 공급자에게 불이익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의료수준을 높이고 의료의 질과 보장성 확대 측면에서 효율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연지정제 폐지 주장을 폈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시기상조다

정부와 시민단체, 보험자 모두 당연지정제 폐지 주장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의 대대적인 손질과 개편은 필요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의료서비스는 현재처럼 강제돼야 하고 공공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지정제 유지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건강상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학력과 경제적 능력처럼 건강수준도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건강상 빈부격차 해소는 중요한 문제이며, 이를 위한 정책적 수단이 건강보험제도"라고 밝혔다.

김창보 국장은 "정형선 교수는 공공의료 확보가 계약제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요양기관계약제는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또다른 수가체계의 도입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량한 보험회사는 우수한 의료기관과 계약하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보험회사는 질이 낮은 의료기관과 계약하게 되면서 건강보험의 형평성은 더욱 낮아져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당연지정제 유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선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공공적 성격 강화를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서 이에 대한 폐단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의 수익사업을 확대하려는 복지부 정책은 현재의 수가체계와 병원의 수익구조를 더욱 왜곡시킬 우려가 있으며, 근본적인 개선을 가로막을 것이란 의견도 내놨다.

건강보험공단 이평수 상무이사는 의료를 완전한 공공재도, 완전한 사용재도 아니지만 공공재를 추구해한다는 논리에서 출발, 요양기관계약제는 언젠가 가야할 방향이지만 공공의료 확보와 보장성 확보 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시민단체와 다소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이평수 상무이사는 "현재 요양기관계약제를 두고 공급자와 보험자는 동상이몽"이라며 "공급자는 통제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통제가 더욱 심해질 수 있고, 보험자는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기 위해선 의료기관의 병상, 고가장비 등의 적정공급과 적정진료비·적정보상 수준, 분배방법과 지불제도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공급자와 가입자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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