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이항 교수님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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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이항 교수님 영전에
  • 박현
  • 승인 2005.03.0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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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보내주시던 정감어린 눈동자를 이젠 다시 보지 못하겠군요.
헤어질 때면 다시 보자며 흔들던 선생님의 손 다시는 잡지 못하겠군요.
갑작스런 죽음이 있다는 말은 들렀지만 이렇게 황망한 돌아가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탁월한 의사이시면서 훌륭한 선생이었습니다.
1966년 서울의과대학을 졸업 후 낯선 미국 땅 명문 콜롬비아 의과대학교 병원 소아과를 수료하시고, 로체스터 대학에서 소아혈액종양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이후 노스웨스턴 대학, 로체스터 대학, 시카고 대학에서 연구와 경력을 쌓으셨습니다. 외국 아이를 진료하면 더 보람있더냐고 반문하셨던 부친의 말씀은 선생님의 진로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로 1983년 5년간 근무하던 시카고 대학 병원 소아혈액종양학과장을 끝으로 미국 의사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하셨습니다.

1984년부터 한양의대 소아과 교수로서 근무하시면서 초기 적응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시고, 야합하지 않고 미국에서의 진료 방식을 초지일관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혈액 종양에 관한 지식은 우리나라 소아 혈액종양의 발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비약적인 발전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셨고, 봉사자로서 일관 하셨습니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 11년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장 재직 시 환아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발 벗고 나서 여러 사회복지협회에 관여하셨고, 소아혈액암 환자의 모임인 한마음회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셨습니다. 한마음회에는 치유 환아와 그 보호자 뿐 아니라 세상을 달리한 환아의 보호자들도 참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이 항 선생님만의 인품 때문이었습니다.

한양대학병원의 암센터 소장과 조혈 모세포 이식센터 소장을 맡으셨고, 대한 소아혈액종양학회장, 대한 혈액학회 회장, 대한 조혈모세포이식학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또한 소아과 학회를 위해 회장직을 2004년 11월부터 성실히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사회보건의 면에도 힘을 기울여 안전사고의 희생자가 암환아의 사망보다 많다고 하시면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영상물 제작을 기획하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한편 선생님은 따뜻한 가장이었고, 청소년같은 꿈을 지닌 예술가이었습니다.
평소 모친에 대해 삼일독립운동에 관여하심을 자랑스러워 하셨으며, 외국 아이를 위하는 것보다는 한국 아이를 위해 진료하라는 부친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귀국하신 효자이었습니다. 화가이신 미망인의 전시회 때는 어디다 그림을 걸까하고 세심하게 검토하는 조력자이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딸에게는 이메일로 사랑을 표현하는 자상한 아빠였습니다.

경기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나타났던 연극에 관한 지대한 관심과 진지함은 평생에 걸쳐 그의 삶을 지배하였습니다. 서울대학 의과대학 의대생으로서 학업에 여염이 없던 시절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나이 들어서 변치 않는 정열로 관객을 울고 웃기는 천생의 연기, 너무나 많은 재주를 가졌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린이날 매년 쉬지 않고 환아를 위해 무대를 만들고 배우로서 환아를 웃게 만든 선생님, 이제 누가 그 무대를 만들며 환아를 즐겁게 하겠습니까?

유난히 많은 지적 욕심과 포부, 지체할 수 없었던 욕망과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을 연극에서 실현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여 봅니다. 선생님은 너무나 많은 웃음을 선사해 주셨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선생님만의 고민, 신념, 고집을 알아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때문에 유난히 쓸쓸하지는 않으셨는지 반성도 해 봅니다.

이제 선생님이 가신 후 빈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부터 정말 선생님의 능력과 지혜가 소아과학회의 발전에 초석이 되어야 할 이 어려운 시기에 무엇이 급해 일언반구 말씀도 남기지 않으시고 홀염히 떠나셨습니까? 무엇이 그리 급하셨습니까? 선생님을 보낸 후 점점 왜소하여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무슨 까닭입니까?

선생님 부디 하시고자 하는 모든 욕망과 기대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이루시고, 편히 잠드시길 기원합니다.


2005년 2월28일 대한소아과학회 이사장 윤용수 외 대한소아과학회 회원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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