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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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길
  • 이경철
  • 승인 2009.05.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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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공동체 푸른영상의 "초보" 김준호 감독은 2006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방효태 할아버지를 만났다.

방 할아버지는 미군기지 이전 부지로 들어간 논에서 처벌을 감수하고 계속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 옆에서 카메라를 든 김 감독은 농사를 어떻게 짓는 것인지 묻고 소주를 받아 마시기도 하며 노인의 하루를 뒤쫓았다.

14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되는 "길"은 그렇게 탄생한 영화다. 정부와 시위대의 갈등에 집중할 수도 있었겠지만, 김 감독은 그보다 방 할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생 농사로 단단하게 다져진 몸에, 벌어진 앞니를 훤히 드러내며 소탈한 웃음을 짓는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 섞인 말은 어떤 운동가의 목청 높은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방 할아버지는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농사는 지어야지, 그게 농부여", "피들은 다 뽑아줘야 혀. 안 그러면 벼 자리까지 차지하니께. 벼가 주인네인데 나그네가 들어와서 다 차지해 버린다는 거여" 같은 생활의 지혜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로 더 많이 배운 감독과 학생들의 가슴을 때린다.

나무 한 그루를 통해 숲 전체를 보듯, 지혜로운 한 노인의 생활을 통해 대추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접근법은 관객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데 적합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영화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관객이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감독과 노인의 삶은 밀착돼 있다. 감독에게는 방 할아버지와의 일화 하나하나가 소중하겠으나, 관객에게는 대추리에 관한 더욱 풍성하고 명확한 정보와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막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단점에도, 어느새 대중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상기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제작진이 2006년, 2007년 봄의 한 시골 마을 이야기를 이제 와서 굳이 들려주는 이유는 기록 영화의 본질인 "잊지 말자"는 한마디에 숨어있을 것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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