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번 애프터 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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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번 애프터 리딩
  • 이경철
  • 승인 2009.03.23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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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무미건조한 잔혹성에 놀랐던 팬이라면 이번에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겠다. 코언 형제의 신작 "번 애프터 리딩"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블랙 코미디다.

이 영화는 개성 넘치는 온갖 인물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사건들도 이리저리 꼬여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물론 코언 형제의 세계가 만만할 리는 없다. 겉으로는 싱거운 유머의 나열로 보일지 모르지만 안에는 기묘한 공기가 가득하며 날카로운 칼날도 어딘가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오스본 콕스(존 말코비치)는 알코올 중독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에게는 잘 나가는 의사인 아내 케이티(틸다 스윈턴)가 있는데, 케이티는 경찰관 해리 파러(조지 클루니)와 내연 관계에 있다.

오스본은 아내의 비웃음 속에서 회고록을 쓰는데, 어쩌다가 이 내용이 담긴 CD가 헬스클럽 트레이너 채드 펠드하이머(브래드 피트)와 린다 리츠키(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전신 성형수술을 꿈꾸는 린다는 채드와 함께 CIA 일급비밀(?)이 담긴 CD를 빌미로 오스본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하지만 오스본은 이에 쉽게 응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린다는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해리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내연 관계와 관계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바람둥이 해리는 오스본의 아내 케이티와 바람을 피우는 와중에 린다와도 데이트를 시작한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의 대표적인 장르인 첩보 스릴러를 가볍게 뒤트는 풍자가 유쾌하고도 쌉쌀하다. 시체가 점점 늘어가고 상황은 잔인하게 돌아가는데 그 속의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짓을 너무나 당연하게 계속한다. 더없이 어설픈 CIA의 관료주의적인 모습, 미국인 사기꾼들을 바라보는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의 황망한 표정들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코언 형제의 공간 감각 역시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조명만 찬란한 CIA 본부, 위압적이고도 현대적인 러시아 대사관 등 현실적 공간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덧칠됐다.

과장되고 기묘한 캐릭터들, 그리고 블록버스터에서의 말쑥한 모습을 내버리고 주어진 배역에 투신한 스타들의 열연이야말로 이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몸을 들썩이는 참견쟁이 채드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바쁜 바람둥이 경찰관 해리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 등 두 꽃미남파 배우들의 변신이 뜻밖에 잘 어울린다.

누구보다 뛰어난 연기는 코미디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존 말코비치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보여준다. 술잔이나 총을 들고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는 심리상태 불안정한 전직 CIA 요원 오스본과 성형수술을 향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린다는 영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인물들이다.

26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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