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킬러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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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킬러들의 도시
  • 이경철
  • 승인 2009.02.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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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의 본분이라는 게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영화 "킬러들의 도시"에 나오는 두 명의 킬러는 아무리 봐도 허술하다.

킬러라기보다 전형적인 동네 아저씨의 외모를 가진 켄(브렌단 글리슨)은 미술관을 둘러보며 여유를 부리고 젊고 잘생긴 킬러 레이(콜린 파렐)는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사탕 상자가 빈 심술쟁이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린다.

보스의 갑작스런 명령을 받고 두 사람이 향하는 벨기에의 도시 브리주도 킬러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의 배경과는 거리가 멀다.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운하가 흐르는 이 도시는 살인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요정이 등장하는 동화 속 배경처럼 보인다.

이 도시에는 진짜 동화처럼 난쟁이와 요정도 있다. 켄과 레이는 신비스럽게 안개가 자욱한 광장에서 이들을 만난다. 미국에서 온 난쟁이는 영화를 촬영 중인 배우다. 레이는 그곳에서 난쟁이를 돌봐주는 요정같은 여자 클로이(클레멘스 포시)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착해 보이는 켄과 레이가 결국 킬러이며 평화스러운 브리주 역시 살인이 일어나는 도시인 것처럼 난쟁이와 요정도 동화 속의 순진한 인물들은 아니다.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에 대해 "쓰레기 같다"며 욕설을 해대는 난쟁이는 사실은 흑인을 싫어하는 인종차별주의자며 요정같은 여자 역시 마약을 파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이 동화 같은 공간에 킬러들이 온 것은 보스의 명령 때문이다. 영국의 한 성당에서 대주교를 살해한 직후 이들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곳인 브리주에서 2주일간 머물라는 명령을 받는다. 마침 레이는 이전 임무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킬러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참이다.

제목에서부터 "킬러"라는 단어가 나오고 실제로 총격신이나 격투신이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액션 영화라기보다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재치있는 대사에 싱거운 유머로 관객들을 킥킥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으며 여기에 크고 작은 반전을 갖춘 잘 짜인 이야기 구조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웃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레이가 저지른 실수와 킬러들이 브리주에 온 이유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영화는 점점 무거워진다.

킬러들의 세상은 기쁨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 같은 곳이다. 레이의 대사를 빌면 "나쁘지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은 곳"인 셈이다. 잠시나마 평화로운 휴가를 즐기던 두 킬러 앞에는 거스를 수 없어 보이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영화에 대한 잔상이 강하게 남는다면 이는 두 배우의 호연과 배경인 도시 브리주가 갖는 매력 덕이다.

특히 콜린 파렐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지닌 킬러"라는 쉽지 않은 인물을 섬세한 설정으로 연기해내며 외모뿐 아니라 연기력도 갖춘 배우임을 증명했고, 그 결과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2006년 "식스 슈터"로 아카데미영화제 단편영화상을 탄 영국 출신 마틴 맥도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원제는 "In Bruges".

3월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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