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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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이경철
  • 승인 2009.02.0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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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수많은 영화가 다뤄왔던 소재이지만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만큼 용감하고 또 잔인하게 이 소재를 노려보는 영화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가 섞인 가벼운 어조를 띄고 있지만 영화는 묵직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는 것과 죽는 것, 함께 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끈질기게 해답을 찾아나선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단 껍질에 쓴 알맹이"라는 전작들의 장점을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한다.
결혼하고 싶은 노처녀 이야기 "파니 핑크"(1994년)와 다른 이상을 가진 젊은 부부 이야기 "내 남자의 유통기한"(2005년)이 모두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 무거운 진실을 담았었다.

영화는 씨줄과 날줄이 빈틈없이 잘 짜여진 천처럼 촘촘하면서도 힘이 있다.

사과나 파리, 손수건, 장신구,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죽은 이의 재까지 감독이 자연스럽게 심어놓은 소품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처럼 적확하며,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깊이 있는 은유를 담은 것까지 힘있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심장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투박한 화면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연기에서부터 대사, 이야기, 주제에 대한 통찰력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파니 핑크"를 보고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도리스 되리 감독이 거장이 돼서 돌아왔음을 보고 다시 열광할 만하다.

자녀들을 외지로 보낸 뒤 남편과 함께 노년을 보내던 여성 트루디(엘마 베퍼)는 의사로부터 남편 루디(한넬로어 엘스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그 사람이 없이 살 수 있을까" 남편을 졸라 아이들을 만나러 베를린행 기차를 타는 트루디는 "매일 먹는 사과 한 쪽이면 병원 갈 일 없다"며 자신하는 루디에게 차마 그의 몸 상태를 말하지 못한다.

베를린에서 아들과 딸을 만나지만, 왠지 아이들의 모습은 낮설다. 함께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색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 일본에 사는 아들 칼(막시밀리안 브뤼크너) 생각이 나지만 만나러 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였다. 여행 중 갑작스럽게 트루디가 세상을 떠나자 루디는 큰 충격을 받는다. "남겨진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돌아온 집에 아내의 빈자리는 견딜 수 없이 크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중얼거리던 루디는 여행 가방에 아내의 옷과 장신구를 넣고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일본을 향해 떠난다.

죽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트루디가 추고 싶었고, 루디가 일본에서 보게 되는 일본 전통춤 부토(舞蹈)에 응축돼 있다. "그림자의 무용"이라고 불리는 이 춤은 남은 남편이 먼저 떠나간 아내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제는 "벚꽃-꽃구경"이라는 뜻의 "Cherry Blossoms-hanami"이다. 영화 속 벚꽃은 아내에게 남편이 보여주고 싶던 것이며 벚꽃 구경이 한창인 공원은 남편이 부토를 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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