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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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키친
  • 이경철
  • 승인 2009.01.2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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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어지럽게 내리쬐는 날, 갤러리에 몰래 숨어든 젊은 유부녀 모래(신민아)는 어리고 멋진 남자와 마주치고 이 남자의 아찔한 냄새에 취해 외도를 하고 만다.

모래에게는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로 지내다 결혼에 골인한 착한 남편 상인(김태우)이 있고, 모래는 상인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받는다.

요리를 본업으로 삼기 위해 증권사를 그만둔 상인은 프랑스에서 만난 요리사 친구 두레(주지훈)를 초청했다면서 스승 삼아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집에 찾아온 그 친구는 바로 모래가 갤러리에서 만난 그 남자다.

"키친"(감독 홍지영)은 예쁘게 포장된 어른 여자의 환상 속 세계다. 캐릭터부터 만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현실과는 떨어져 있다. 평생 남편 하나만 남자로 알고 살 정도로 순진하지만 발랄하고 도발적인 매력이 있는 주부,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고 성격도 좋은 남편, 프랑스에서 건너와 이국적인 매력을 발하는 자유분방한 천재 요리사가 그들이다.

영화는 멋진 영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장해 관객을 꿈꾸게 만든다. 인물들 사이로, 공간 사이로 들어오거나 사라지는 빛은 더없이 황홀하고, 어느 한 구석 버릴 부분이 없이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 가게, 시장, 거리는 감동스러울 정도다.

심각한 삼각관계지만 주인공들이 사랑 때문에 서로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치정극적인 요소는 후반부에 아주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마저도 우울함을 툭툭 털고 다시 "쿨"하게 흘러간다.

극장만에서라도 동화를 바라는 여성 관객이라면 파스텔톤의 달콤한 환상에 젖어보는 일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의 마음의 움직임이 섬세하게 그려졌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 역시 감성을 적절히 건드린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과도한 "쿨"함에 문득 정신이 들 수도 있다. 한동안 동화를 현실로 착각하고 푹 빠져있다가 착각이 지나치자 꿈임을 깨닫고 번쩍 깨어나는 효과다. 또 여자친구의 손에 붙들려 억지로 극장을 찾은 남성 관객에게는 인내심이 다소 필요할 듯하다.

내달 5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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