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사과
상태바
영화 - 사과
  • 이경철
  • 승인 2008.09.29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 현정(문소리)에게는 7년을 사귄 남자친구 민석(이선균)이 있다. 워낙 만난 지가 오래돼 부모님도, 친구들도 당연히 결혼하리라 생각하는 사이다.

어느날 부모님 몰래 간 여행지에서 현정은 민석에게 갑작스러운 말을 듣는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그래, 오늘은 그만 만나고 내일 다시 보자"고 농담을 던져봤지만 냉정한 대답만 돌아온다. "너를 만나면서 내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는 게 민석이 던진 이별의 사유다.

직장 초년병인 현정은 회사를 결근한 채 대학원생 민석이 다니는 학교를 서성이고 민석의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를 사랑해?"라는 질문에 "아니다"는 확실한 대답을 듣고서야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현정의 주변에는 남자가 1명 더 있다. 주변을 돌며 수줍게 고백하는 남자 상훈(김태우)이다. 예매율이나 비올 확률 등에 의존하는 모범생이지만 그래도 이 남자 순수해 보이기는 하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기도 하고 군대 얘기를 할 때에는 입에서 욕설도 튀어나오는 반갑지 않은 모습도 있지만 현정은 상훈과 결혼하기로 한다. 변치않을 것 같은 이 남자의 진심이 듬직해서인 듯하다.

영화 "사과"에서 신인 강이관 감독의 카메라는 각 캐릭터들 틈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생활 밀착형" 대사와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주변 남녀들의 연애사에 쑥 들어가더니 점점 그들의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다. 인물의 감정을 세심하게 끄집어 내고 그 감정을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데 있어서 "사과"는 지난 수년간 등장했던 영화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들 중 하나다.

이야기는 현정을 둘러싸고 시간상으로 전후로 나뉘어 있는 두 남자(등장하는 시간은 겹치기도 한다)가 가진 감정의 3각관계를 틀로 하고 있다.

이는 연애와 이별, 결혼과 갈등 등 정해진 순서를 밟아가는 여느 연애사와 겹쳐진다. 흔한 얘기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세 남녀의 이야기는 진부하기보다는 공감을 유도한다. 장면마다 힘을 불어 넣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호연 덕분이다.

만약 영화를 보면서 자꾸 스스로의 옛 기억을 돌아보는 스타일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공감하며 웃다 보면 심장을 콕콕 찌르는 아픈 회상의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영화는 나름의 결론으로 향해가지만 이 결론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감독이 중시하는 것은 갈등의 해결보다는 감정 축적과 변화였던 것 같다. 이 때문에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가 다소 힘이 빠져 늘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10월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