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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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멋진 하루
  • 이경철
  • 승인 2008.09.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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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직장도 없이 서른을 넘긴 희수는 통장이 비어 가자 문득 옛 애인 병운에게 빌려준 돈 350만원이 생각난다.

수소문해 찾아간 곳은 경마장. 넉살 좋게 반갑다고 말하는 병운에게 희수는 다짜고짜 차용증을 들이밀며 당장 갚으라며 짜증을 낸다.

사업에 실패한 병운은 돈이 없다면서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꿔 갚겠다고 한다. 옛 연인들이 함께 돈을 빌리러 다니는 이상한 하루가 시작된다.

이들이 초겨울 토요일에 함께 보내는 긴 하루를 따라가는 "멋진 하루"는 강한 인상을 남기려고 아옹다옹하는 많은 상업 영화들 틈에서 신선하게 빛을 내는 영화다.

"멋진 하루"는 긴 시간을 담지 않고도 많은 감정을 품는다. 희수와 병운의 마음 속 변화는 조용히 진전된다. 병운은 무심하게 늘어놓는 수다 속에 진심을 담고 희수는 누구에게나 친절해서 무책임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병운의 매력을 다시 깨닫는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이 영화의 힘은 은근하면서도 야무지다.

카메라는 서울의 골목길과 학교 교정, 지하철 역을 구석구석 비추면서 일상적인 공간에 짙은 감성을 담는다. 병운이 돈을 꾸기 위해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각양각색의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물과 배경을 동시에 따뜻하게 품은 이 영화에 배우들의 연기가 힘을 보탰다. 전도연은 "칸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다독다독 잘 묻어 두기에 적합한 선택을 했다. "밀양"과 비교될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의 강렬한 연기를 피한 대신 일상에 가까운 연기를 섬세하게 펼쳐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리액션이 좋은 배우로 평가받는 하정우는 이번에도 역시 쟁쟁한 상대 배우의 아우라에 묻히지 않았다. 넉살 좋고 수다스러운 연기는 초반에 잠시 전작 "비스티 보이즈"와 겹쳐지지만 이내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병운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이 여성 캐릭터에 집중한 반면 "멋진 하루"에서는 오히려 남자 캐릭터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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