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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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더 걸
  • 이경철
  • 승인 2008.09.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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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에서 정치적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져야 설득력 있는 정치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랄하지만 유머감각도 잊지 않은 풍자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고 관객의 심금을 조용히 울릴 때도 있어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장면도 물론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편의 영화로서 2시간 동안 관객의 흥미를 잡아끌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독일에서 18년 만에 날아온 영화 "더 걸"(1990)은 유쾌하며 흥미진진한 정치 영화다. 미하엘 페어회벤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한 평범한 여성이 사회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연대기 형식으로 그린다.

독일의 작은 도시 필징에서 가톨릭 집안 맏딸로 태어난 소냐(레냐 스톨테)는 건강하게 자라 학생이 된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여학교에 들어간 소냐는 먼저 학교 안의 비리를 접하게 되지만 총명함과 성실함 덕에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다.

소냐는 대통령 주최 에세이 공모전에서 1등을 해 프랑스 파리로 포상 여행을 다녀오게 되고 마을의 스타가 된다. 학교에 교생 선생님으로 온 마틴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 소냐는 두 번째 에세이 공모전에 "2차 대전 당시의 우리 마을"이란 주제로 응모하기로 한다.

당시 가톨릭 교회와 언론은 나치에 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냐는 점점 사람들이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에세이 마감 시한이 지나고 소냐는 졸업 후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만 진실을 캐기 위한 조사를 재개한다.

소냐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당시부터 용감한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 긴 시간을 아우르는 "더 걸"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튼튼하다.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주제를 향해 내달리며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단단한 골격을 바탕으로 삼은 영화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은 장면 장면에 숨어있는 풍자다. 부조리한 상황을 비틀어 바라보는 재치와 유머가 살아있다. 동시에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시선도 건재하다.

영화는 사회의 비리와 이기적인 인간 심리를 비웃으면서 대체로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나아가지만 결말에 이르러 일시에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소냐의 외침과 질주를 담은 마지막 두 장면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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