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이노센트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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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노센트 보이스
  • 이경철
  • 승인 2008.08.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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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소년의 전쟁
만약 당신이 극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스타일이라면 28일 개봉하는 영화 "이노센트 보이스"(Innocent Voices)는 끊임없이 당신을 괴롭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다면 영화를 보는 중 가끔이라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건 현실이 아니라 영화일 뿐이야"라며 자신을 다독여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엘살바도르의 내전이다. 중앙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이 나라는 1981년부터 12년 동안 내전을 겪었다. 보수와 진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이 내전이 12년 동안이나 지속한 것은 미국의 개입 때문이었다. 내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은 8만 명이나 되고 이들 중 상당수는 민간인이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사는 곳은 정부군과 게릴라의 교전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는 도시의 외곽 지역이다. 전투는 주로 밤에 일어난다. 밤에는 총알이 집안까지 빗발칠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지만 낮에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이 곳에 사는 열한 살 소년 차바(카를로스 패딜라)는 어머니(레오노어 바레라)에게 혼나는 게 일이다. 전쟁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장난치고 놀러다니기 일쑤이기 때문에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꾸 혼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차바는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지금 이 집안의 가장이 된 처지다.

영화가 전쟁과 어린이를 다루는 방식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이나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다카하타 이사오)처럼 전쟁의 참상과 그 와중에도 밝기만 한 어린이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총탄이 빗발치는 중에도 아이들은 얼굴에 립스틱을 칠한 채 장난에 열중하며 식탁 앞에서 실수로 방귀뀌는 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하늘에 연을 날리며 놀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서 혼나기도 하며 탱크가 지나가는 길거리에서도 춤추며 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차바는 같은 반 여자아이 크리스티나(주나 프리머스)에게 수줍게 고백하며 풋사랑을 키워가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어머니와 "뚱땡이 누나", 아무나 붙잡고 "아빠"라고 외치는 막내까지 네 식구인 차바의 가족은 주위의 불안한 상황에 한걸음 비껴있는 느낌이다.

이 영화가 다른 전쟁영화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것은 전쟁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구쟁이이던 차바가 어른들의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순간부터다.

열두 살이 되면 차바 역시 징집 대상이 돼 정부군에 끌려가야 하는 상황인 것. 여기에 정부군과 게릴라의 싸움이 한층 격해지면서 이전에는 주변에만 머물던 전쟁이 차바 개인의 삶에 직접 위협이 되는 것이다.

열두 번째 생일을 전후해 옆집 누나는 총을 맞아 싸늘한 주검이 되고 어느 날 찾아가 본 크리스티나의 집이 폭탄을 맞아 폐허가 되자 이제 차바는 징집을 피해 계속 도망을 다녀야 할지 아니면 게릴라군에 입대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차바의 밝은 모습과 함께 차바보다 먼저 전쟁에 개입된 주변인물들을 참상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가던 영화는 차바의 운명이 결정되는 후반부로 향하면서 점점 어두운 색조로 변해간다.

이렇게 영화의 톤이 점점 어두워지던 영화는 차바가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절정에 오른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관객들의 감정 역시 영화의 절정에서 최고조에 이르지만 정작 관객들이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때는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이다.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 같은 참상의 뒤에는 엘살바도르 정부군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미군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에 여전히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3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군대에 끌려가고 있다니, "현실이 아니라 영화"라는 관객 스스로 다독임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주인공 꼬마 아이의 슬픈 눈빛이 잊히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멕시코의 중견 감독 루이스 만도키. 영화는 2005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아동영화 부문 대상인 "크리스탈 곰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시애틀국제영화제에서도 대상을 차지했다. 수입사 스튜디오2.0은 일단 종로의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한 뒤 차츰 상영관을 늘릴 계획이다.

15세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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