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 지방병원 설땅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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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집중, 지방병원 설땅없다
  • 정은주
  • 승인 2005.01.17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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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병원 자구책 마련 나서
의료기관의 대형화와 수도권 집중현상이 극심해지고 주40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한 비용증가로 병원들의 경영환경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방의 병원들이 공동으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대구시청과 경북대학교병원·영남대학교병원·계명대학교병원·파티마병원·대구가톨릭대병원 등 주요 5개 병원, 대구·경북병원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1월 11일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지역병원 발전을 위한 대책회의를 갖고 대구 경북지역 병원들이 처한 현황과 경쟁력 확보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경쟁관계에 놓인 병원들이 최근의 어려운 경영여건을 감안,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타 지역과 병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별 기관이 해결할 과제가 있는 반면에 함께 풀어야 할 과제, 정부가 해결해줘야 할 몫이 따로 있기 때문.


▣ 지방병원, 더 이상 설 땅 없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병상증축 차원을 넘어 공룡병원이라 표현될 만큼 몸집 불리기가 한창인데다 최근 KTX 개통 등 교통여건마저 뒷받침되면서 지방 병원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대구에서 서울까지 이동시간은 겨우 1시간40분. 이로 인해 지방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환자를 붙잡기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경북대학교병원 송정흡 QA실장은 “환자들이 진료나 추천을 의뢰해오거나 진료날짜를 기다리지 않고 취소한 뒤 서울로 이동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특히 서울에서 촬영한 X-RAY나 MRI 필름이 담긴 CD를 가지고 오는 환자가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병원은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다. 일부는 서울로 가고 나머지 일부는 지방의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대구 파티마병원 기획실 관계자는 “규모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우리 병원은 지역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집중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경쟁력을 가지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그나마 수녀님들의 친절함이 부각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 병원 자체적으로 경영컨설팅을 받아 시행하고 있지만 병원이 스스로 개선해야 할 부분과 지역 병원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부분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이번 공동대책회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의료시장이 개방되고 지방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수도권지역 초일류병원의 움직임이 일어나면 대자본에 의한 기술주도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한 병원계 재편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병원보직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병원들이 경영난을 타개하고 공생하기 위해 특정 병원의 특화된 분야를 지역의 타 병원이 집중 지원해 주거나 침범하지 않는 형태 또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의 공동출자·공동운영·공동이용 등 효율화를 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방환자의 수도권 유입현상은 민간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의료경쟁력은 낮아지고 시민들의 이탈현상이 심화되면서 지역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구시청이 발벗고 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


▣ 지역경제 발전과 지방병원 회생 위해 민관 협력

대구시청과 대구경북병원회, 주요 병원들은 일단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대구·경북지역 병원의 현황과 환자유출현상의 원인 등을 분석하고 지역병원의 경쟁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지역 병원과 대구지역 병원의 의료장비나 의료기술 등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차이가 있는지, 대구시민들의 병원만족도와 불만사항은 무엇인지, 서울로 가는 이유와 서울지역 의료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분석하고 대구지역 병원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화나 전문화 방안과 친밀도 제고방안, 대진료권이 갖추어야 할 의료서비스 제공 능력, 공공과 민간의 협력방안 등을 다각도로 모색키로 한 것이다.

연구를 맡게될 진흥원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의 대구·경북권역 주민의 의료이용현황 즉, 지역환자 구성비와 질병유형, 어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지 등을 분석하고 교통망 변화와 진료권의 영향과의 관계, 지역의 장기발전계획과 지역내 병원산업의 발전방향, 의료자원의 공급현황과 향후 의료수요 예측, 지역에서 이탈하는 환자들의 진료실적 및 질환 등을 총괄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이밖에 수도권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지방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이용만족도와 비용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지방의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소비자 인식도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대구시청은 지역시민들이 지역내에서 편리하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수도권 대형병원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계획이고, 대형병원들은 환자의 유출을 막고 아울러 기존 병원들이 공존할 수 있는 대응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죽어가는 대구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있어 과거 명성을 누렸던 "병원산업"을 활용해 역으로 타지방과 서울지역 환자를 대구까지 불러들이는 경쟁력을 갖추자는 취지까지 더해졌다.

병원들은 서울지역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춰야 할 부분과 개선사항을 분석하고 틈새시장을 찾을 계획이다. 특히 의료인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친절도 등이 서울에 비해 부족한 만큼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간다는 것.

진흥원 관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지역내 경쟁적 의료서비스 제공 구조를 상호 협조적 체계로 유도해 중복투자를 지양하고, 권역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른 지방과 비교한 특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네트웍 구축이나 공동 대응방안 등을 제시해 관계부처와 함께 해결해나가는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역내 대형병원의 경우 서울로 환자가 집중되더라도 중소병원에서 오는 환자들로 메워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지방의 중소병원은 존립이 어렵게 되므로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규모를 떠나 의료기관종별 기능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내 병원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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