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플래닛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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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플래닛 테러
  • 이경철
  • 승인 2008.06.23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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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섣불리 비판하려 들지 말 것, 피나 고름 따위의 잔인하거나 지저분한 것들에 관대할 것, 그리고 팝콘과 콜라를 준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좌석에 앉을 것.

매표소에서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신작 "플래닛 테러"의 티켓을 끊은 사람은 이 세 가지만 명심한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된 셈이다.

감독의 관심은 애초에 매끈한 줄거리나 깔끔한 화면 혹은 대중적인 취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적은 예산에 감독의 개성과 취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는 B급 영화의 전형처럼 감독이 보여주는 화면은 시종일관 제멋대로다.

오래된 옛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크린에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간혹 포커스가 나가기도 하다가(모두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결국은 필름이 불에 탄 듯 화면이 끊겼다가 "죄송하다"는 자막까지 나온다.

줄거리 역시 황당하기 그지 없다.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등장해 점점 수가 늘어나는 좀비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팔과 다리를 뜯어 제 입속에 넣기 바쁘고 거기 있을 리가 없는 악당은 느닷없이 "네가 오길 기다렸다"며 불쑥 나타난다.

텍사스의 시골 마을. 고고춤을 추는 댄서 체리 달링(로즈 맥고완)은 댄서 일에 지친 나머지 마을을 떠나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업종"을 변경하려 하고 있다. 그와 사랑에 빠진 남자 엘레이(프레디 로드리게스)는 대형 트럭에 총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데다 무술에도 능한 수수께끼의 사나이다.

엘레이의 트럭을 타고 마을을 벗어나는 체리 달링은 도로변에서 좀비들의 습격을 받고 겨우 목숨은 건지지만 다리를 잃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좀비들은 땀구멍이 부풀어 온 몸이 고름 투성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도시가 좀비들로 득실거리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함께 좀비들에게 맞서고 여주인공 체리 달링은 다리가 있었던 자리에 머신건을 장착한다.

뻔한 스토리이지만 영화는 감독의 농담으로 가득하다. 대사나 화면에 담긴 농담은 저급하고 유치하지만 재치 있다. 좀비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는 중에도, 인물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감독의 장난기는 끊이질 않는다.
22살이던 1992년 텍사스 오스틴 대학 재학 중 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로 주목을 받은 뒤 "황혼에서 새벽까지", "씬 시티", "스파이 키드" 등을 통해 주류 영화계에서 성공한 로드리게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인생이 시작됐던 텍사스를 영화의 배경으로 정한 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영화적 농담을 쏟아넣은 듯하다.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여주인공은 총이 묶인 다리를 공중으로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총알을 발사해 좀비들을 박살내고 간호사는 허벅지에 마취주사를 장전하고 마치 무기처럼 주사기를 던져댄다. 죽을 위기에 처한 식당 주인은 실수로 피를 맛본 뒤 "새로운 소스의 발견"이라며 신이 나며 10대의 베이비시터들은 좀비들의 공격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떠들면서 티격태격한다.

감독이 "플래닛 테러"를 "마음먹고" 제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됐다는 제작 배경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좀비물인 "플래닛 테러"와 슬래셔 무비에 가까운 "데쓰 프루프"(작년 국내 개봉)를 각각 75분 분량으로 만들기로 한 뒤 두 영화를 묶어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상영했다.

한국에서는 두 영화가 각각 상영되는 관계로 이번에 개봉하는 "플래닛 테러"는 원편에서 15분이 추가된 인터내셔널 버전이다.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장면이 이어지는데도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무사히 통과했다.

7월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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