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어사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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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어사일럼
  • 이경철
  • 승인 2007.10.04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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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된 사랑
사랑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을까. 영혼을 아름답게 해야 할 사랑은 되레 몸담고 있는 세계를 모두 황폐화시킬 정도로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랑은 과연 인간을 치유하는 약인지, 지옥까지 경험하게 하는 독인지.

패트릭 맥그래스가 1990년 출간한 소설 "어사일럼"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을 생생히 들여다보며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는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정신병원 원장이었던 아버지를 둔 까닭에 어린 시절을 정신병원,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정신병 범죄자 수용소에서 보낸 특이한 경험을 지니고 있어 이곳을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어사일럼(asylum)"은 정신병원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정신과 의사 부인과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범죄자 간의 불꽃 튀는 사랑이 큰 얼개. 그러나 단순히 이것만은 아니다. 정신병 환자를 은밀히 조종하는 정신과 의사의 미심쩍은 지켜보기와 사랑으로 인해 파괴되는 세계가 생생히 묘사된다. 언뜻 학문적 연구를 위한 것인 듯 보이는 의사의 관음 행위는 영화의 심리적 반전을 수반한다.

여기에는 주연배우들의 호연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 이 작품으로 지난해 이브닝 스탠더드 브리티시 필름어워드 최고 배우상을 받은 여주인공 스텔라 역의 나타샤 리처드슨은 금지된 사랑으로 철저히 파괴되는 여자를 진한 밀도로 연기한다.

영화의 음습한 분위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 피터 역의 이언 매켈런은 더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영국 최고의 배우로 꼽힌다. 국내서도 더 이상 "간달프"에만 머물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

스텔라는 한 정신병원의 부원장이 된 남편을 따라 아들 찰리와 함께 정신병원 사택에 들어온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스텔라의 욕구는 시어머니에게 늘 부적절한 행실로 지탄받으며 남편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남편의 우려에도 스텔라는 답답한 병원 생활을 지겨워하며 성적병리현상을 연구한다는 피터 박사에게 호감을 가질 뿐. 그러나 피터 박사는 원장 자리를 놓고 남편과 경쟁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정원에 일하러 온 환자 에드가를 만나며 스텔라의 성적 욕망과 이성에 대한 은밀한 감정이 솟구쳐오른다. 에드가는 바람난 아내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후 중증 인격장애로 6년째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는 조각가. 피터 박사는 스텔라에게 "빗나간 천재 조각가" 에드가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스텔라와 에드가는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정사에 빠져들고 마침내 스텔라는 진심으로 에드가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에드가는 병원에서 도망쳐나와 스텔라를 다시 만나며, 스텔라에게 가정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사랑에 빠진 스텔라는 아들마저 버리고 에드가와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에드가의 질투심은 스텔라를 점점 옥죈다.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카메라와 드라마 전개는 스릴러의 묘미를 느끼게 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세 명의 주요 배역뿐 아니라 스텔라 남편의 배신감과 절망감, 금지된 사랑에 빠진 엄마를 둔 어린 아들의 방황까지도 세심하게 표현돼 영화의 격을 높인다.

이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의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신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영 아담"의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 작품이다.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던 "영 아담"은 에든버러 영화제 개막작으로 초대되는 등 호평받았으며 매킨지 감독은 이 작품으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거머쥐며 재능을 과시했다. "어사일럼"은 더욱 성숙하고 농밀한 세계로 확대된다.

1950년대 신분과 계급, 성적 차별이 여전히 지배하는 영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함께 느낄 수 있어 단순한 로맨스 스릴러를 넘어선다.

11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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