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에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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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에 "난색"
  • 정은주
  • 승인 2007.10.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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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도 입법례 없으며, 실효성과 합목적성 의문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앞두고 정부를 비롯해 학계, 의료계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두는 이같은 입법례는 세계적으로도 없고, 소송건수 증가 등 사회적 비용증가를 유발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10월 2일 국회의원회관 101호에서 개최한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 약인가 독인가 정책토론회’에서 김강립 복지부 의료정책팀장은 이같은 정부입장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 팀장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비용을 부담하는 잠재적 환자인 국민까지 고려해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형사처벌특례와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등에 대해서는 정부부처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입법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팀장이 지적한 부분은 법안의 합목적성과 실효성이다.
의료서비스 자체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전문적이어서 획일화된 법안이 모든 사안에 어떤 잣대를 제시할지 판단에 어려움이 있으며, 소송건수의 증가로 사회적 비용증가도 유발할 것이란 시각이다.

법 제정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합목적성과 실효성을 볼 때 신속한 피해구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의사의 방어진료나 진료거부 등 부작용이 따르고, 의사와 환자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법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쟁조정제도가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선 양 당사자가 모두 수용해야 하지만 양측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란게 복지부 고민.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학계에서도 제기됐다.

왕상한 교수, 입증책임 전환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
법안의 핵심이 되는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해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는 법학자의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입증책임 전환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는 ‘의료정보가 의료진에 편중됐다’는 지적과 관련, 이미 환자는 의료분쟁에서 의료인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필요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으며, 의료인의 과실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가 더 있으면 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법안에 담는 형태로 보완해야지 증거가 의사에 편중됐다는 이유로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주장이다.

제정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서강대 법대 왕상한 교수는 “환자에게 자료가 불충분해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비약”이라고 강조하고,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한 규정은 타협의 여지가 없으며 차라리 입증책임 관련 규정과 형사처벌특례조항을 함께 법안에서 삭제하고,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입증책임 전환은 방어진료, 진료거부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고도의 전문화된 의료행위를 획일화된 법으로 모두 규제할 수는 없으며,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환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변호사를 위한 법이며,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소송으로 이어지고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왕 교수의 의견이다.

성명훈 교수, 의료현장에서 1-2%에 해당하는 변수까지 고려하면서 진료하는 것은 무리
서울대학교병원 성명훈 교수는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과정에서 찬성하는 측은 자동차손해배상법을 근거로 들지만 신체의 질병을 고치는 일은 기계를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의사가 전문가이므로 전지전능하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출발하는 데에 우려를 표명했다.

성 교수는 의료현장의 사례를 들어 충수돌기염의 경우 흔한 질병이지만 1-2%에선 심각한 경우가 있고 패혈증 발생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1-2일이 걸리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하고, 패혈증이 우려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방어진료를 하면 대다수의 충수돌기염환자는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또 현재 건강보험에서는 한 환자에 대해 1년에 두 번 PET-CT, MRI 촬영을 인정하고 있는데 암환자에 대해 왜 촬영을 한 번 더 하지 않았는지 추궁한다면 현재의 보험심사지침과 배치된다는 의견도 밝혔다.


시민단체, 긴 소송기간과 의료정보의 의료인 독점 고려해 입증책임 전환 필요
이에 반해 의료사고피해구제법에 대해 찬성입장은 밝히고 있는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소송은 일반소송보다 소송기간이 4배 이상 걸리는 지루한 싸움이고, 소송이나 조정 등의 제도가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의 정보와 의료인간의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합리적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만들어 신속한 피해구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실효성의 핵심은 입증책임의 전환에 있다”며 의료행위는 전문적이고 폐쇄적이며, 정보도 의료인이 가지고 있는데 환자가 이를 입증하는게 가능한지 반문했다. 법원의 판례 경향도 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묻고 있으며, 입증책임 전환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인재 변호사는 “의료소송 현장에서 볼 때 소송근거가 될 자료의 허위기재, 부실기재 사례가 많지만 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으며 다만 미기재시 경미하게 처벌규정이 있을 뿐”이라며 “의료행위의 밀실성과 전문성의 특수성으로 인해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거나 의료인이 임상경과에 관한 사항과 소견을 사실대로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 이상 입증책임 전환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초청토론자로 참석한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기존 제도의 실효성이 없었으며, 현장에서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정효성 병원협회 법제이사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의사의 과실이 없고, 환자의 잘못도 없는 과실유무의 경계영역에 있는 부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필요적 조정전치주의와 별도 기금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시민단체와 의료계․학계가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20여년간 이어져온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성명훈 교수, 변호사에게 소송패소에 따른 입증책임 물으면 사건 수임할 것인지 반문
성명훈 교수는 소송의 무과실을 입증하라면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의사라면 입증책임을 전환할 경우 진료위축이 없을 것인가라며 이인재 변호사에 반문하기도 했다.

플로어 토론으로 참여한 정인화 대한중소병원협의회장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이라는 법명은 국민은 잠재적 피해자고 의료기관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입장이 반영돼 있어 가치중립적이지 못하며,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고 이렇게 되면 방어진료와 의료비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특히 “기존 법안에는 환자의 난동금지 등의 규정이 포함돼 있으나 이번 법안에는 빠져 있다”며 “형사처벌특례에 과실치상뿐 아니라 과실치사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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