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어느 멋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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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어느 멋진 순간
  • 윤종원
  • 승인 2006.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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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사랑 놀음"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영화다.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에이리언" "블랙호크 다운"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 블록버스터부터 SF영화, 그리고 인생의 철학이 녹아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잔잔하면서도 의미 있는 영화를 내놓았다. 이번에도 그와 멋진 호흡을 자랑했던 러셀 크로와 함께 했다.

거칠고 정신없는 도시의 일상에 지치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 한번쯤 고즈넉한 시골에서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보지 않은 도시인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도시의 삭막한 생활을 버리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라도 탈출의 용기를 맛보자. 삶은 돈을 많이 벌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영화는 누구나 다 알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쳇바퀴를 보여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아주 멋진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피터 메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스콧 감독와 메일은 오랜 친구 사이. 메일은 15년 이상 프랑스 남부에서 살아왔다. 원작보다 생생히 묘사된 캐릭터는 스콧 감독이 자신의 옆집 남자를 모델로 했기 때문. 25살의 젊고 매력적인 증권매매자가 그 주인공이다. 새벽 5시45분에 출근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그를 보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채권선물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런던의 펀드 매니저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 분). 휴가라고는 하루도 없이 성공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 그에게 헨리 삼촌(앨버트 피니)의 부고가 날아온다. 영국인이면서도 프로방스를 사랑했던 삼촌과 보낸 어린 시절은 맥스의 추억의 전부다.

프로방스의 옛스러운 저택과 와인용 포도밭을 찾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과 함께 포도밭을 가꿔온 듀플러를 만난다. 추억의 의미조차 잊고 살아온 맥스는 저택을 팔려 하고, 삼촌의 뜻을 지키길 바라는 듀플러와 대립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페니 샤넬(마리옹 코틸라드)은 바람둥이 맥스에게 야릇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 사이 삼촌의 사생아임을 주장하며 크리스트 로버츠(애비 코니시)가 미국에서 찾아온다.

저택을 수리하며 맥스는 곳곳에서 삼촌과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긴다. 잊고 지냈던 추억은 맥스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페니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며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도시와 시골의 대비. 도시에서의 삶이 나쁘다고만, 시골에서의 삶이 풍요롭다고만 할 수 없다. 당신인생의 "멋진 순간"이 숨쉬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을 뿐.

프랑스의 넓고 한적한 포도밭은 정글 같은 도시 런던과 비교되며 시각적인 대비 효과를 거둔다. "지금은 그 생활이 좋겠지만 몇 달 있으면 심심하고 무료할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사랑하는 이와 키스로 대답을 대신하는 남자의 행복한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영화다.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이뤘던 거장은 이제 관객에게 소품 같은 영화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 일흔 살의 노감독은 연륜을 보여준다. 별다른 영화적 기법 없이 그의 인생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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