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호텔 르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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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호텔 르완다
  • 윤종원
  • 승인 2006.08.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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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판 쉰들러 이야기, 호텔 르완다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우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흑인 배우가 휩쓸어 화제가 됐다. "레이"의 제이미 폭스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모건 프리먼이 그 영광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와중에 또 한 명의 흑인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돈 치들(42)이다. 국내에서는 유명세가 덜하지만 이 흑인 배우는 미국 영화계에서 보석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단적으로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크래쉬"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이기도 한 것. 그는 현재 "오션스 서틴"을 촬영 중이며, "트래픽" "블루 데블"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호텔 르완다"는 이런 돈 치들의 가치를 확인하게 하는 영화다. 그의 살아 있는 연기를 따라 영화는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벌어진 무차별 인종학살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그 살 떨리는 지옥과 같은 현장이 그의 젖은 두 눈과 따뜻한 가슴을 거치며 전율로 다가온다. 자칫 건조한 살육 현장 고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소재가 돈 치들로 인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인간 드라마로 탄생한 것이다.

1994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수십 년간 이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을 일단락시키는 평화협정에 동의한다. 르완다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이자 평범한 가장인 폴 루세바기나(돈 치들 분)는 평화협정과 관련해 밀려드는 외교관, 취재진, 지역 유지들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르완다의 대통령은 곧 암살당하고, 후투족의 자치군은 이를 빌미로 투치족 아이들까지 닥치는대로 살해한다. 위협을 느낀 폴은 투치족인 아내와 아이들, 동네 사람들을 호텔로 피신시킨다. 이후 수백명의 투치족 난민이 "살려달라"며 호텔로 몰려든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족 간 내전은지금도 외신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전해지만 "먼나라"인 탓인지 별반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게 사실. 돌이켜보면 1994년은 다만 대단히 더웠던여름의 기억만이 떠오른다. 그러나 같은 시기 르완다에서는 무려 100만명이 살육당했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8분의 1에 달한다.

이 영화는 100일간 1천268명의 목숨을 지켜낸 폴의 실화를 담아냈다. 호텔 밀 콜린스로 밀려드는 투치족 난민들의 목숨을 권력자도, 투사도 아닌 평범한 남자가 오직 인간애라는 이름으로 지켜낸 것이다. 그가 후투족이라는 사실은, 나치의 손아귀에서 유태인들을 지켜준 독일인 쉰들러와 비교하게 만든다.

평범한 남자이기에 사실 그는 처음에는 가족의 안위만 걱정했다. "동네 사람들도 도와주라"는 아내의 부탁에 "내가 지금껏 호텔에서 만들어온 관계는 우리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지 동네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던 그다.

하지만 벨기에 호텔이라는 점 때문에 밀 콜린스가 인종학살 속 안전지대로 분류되자 투치족 난민들이 몰려들고, 살육 현장을 목격한 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만이 아닌 난민 모두의 목숨을 하나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후투족 군대와 후투족 자치군을 상대로 한 목숨을 내건 거래를 시작한다.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예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보여준다.

중국에서 수입한 개당 10센트짜리의 무시무시한 칼로 학살을 자행하는 후투족 자치군은 그 10센트짜리 칼을 50센트에 되팔 수 있다고 좋아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털끝만 한 고민도 없는 후치족 자치군의 태도가 비단 그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당장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차별 폭격을 봐도 알 수 있듯, 1994년의 르완다 참상은 현재에도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해피 엔딩(과연 그것을 "해피 엔딩"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영 쓰린 것이다.

호아퀸 피닉스, 닉 놀테, 장 르노 등 유명 배우들이 조연으로 활약했다.

9월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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