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플라이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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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플라이트 93
  • 윤종원
  • 승인 2006.08.2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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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9ㆍ11, 플라이트 93

"9.11 테러"라고 하면 일단, 세계무역센터에서 거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연이어 미 국방성 펜타곤 건물의 화염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가지 사건이 더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잊혀진 미국 항공기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A93"편의 추락을 그리고 있다. 이 사건은 제작진의 말처럼 잊혀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일 수도 있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민항기 네 대가 이슬람 과격단체에 납치됐다. 이 중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에 정면 충돌했고 한 대는 펜타곤에 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대는 국회의사당 돌진을 목표로 날아가던 중 펜실베니아 외곽의 들판에 추락했다. 테러의 실패라면 실패인 것이다.

북아일랜드 유혈 사태를 그린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역사적 참사를 사실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그리며 정치적 메시지 이전에 "참사" 그 자체의 비극을 고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번에도 그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고, 테러범에 납치된 항공기 이야기가 상업 블록버스터의 최적의 소재인 까닭에 영화는 비극에만 침잠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치를 높인다. 관객의 몰입을 확실하게 이끌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일어났던 참상을 신랄하고 뼈아프게 고발하는데 성공한 것. 자칫 잊혀질 뻔 했던 UA93의 마지막 비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무엇보다 현상 뒤에 자리한 진실을 포착해 냈다. 다른 비행기 세 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주요 시설을 향해 돌진하던 UA93은 왜 "목표"를 수행하지 못하고 추락했을까.

감독은 사고기의 블랙박스 분석과 희생자 유가족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추락 전 비행기 안의 상황을 그렸다. 그가 포착한 진실은 승객들이 테러범들에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서 비행기가 안타깝게 추락했다는 것. 만일 이들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비행기는 국회의사당에서 자폭했을 것이다.

폭탄과 칼로 위협하는 테러범들과 사투를 벌인 승객들의 모습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삶의 끝에 내몰린 승객과 스튜어디스의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본능이었다. 일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다면 분명 등장했을 영웅이 없는 것은 그 때문.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영웅이었다.

비록 9ㆍ11 테러의 "메인화면"에는 등장하지 못할 지언정 UA93의마지막 사투는 역사가 기억해야할 일인 것이다.

영화는 백악관에 앉아서도 만리장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안다는 미국이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를 간결하게 묘사했다. 초강대국 미국의 기막힌 허점과 한심한 위기 대응능력에 대해 비아냥 대지도 않았고 안타깝게 바라보지도 않았다.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비행기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미국의 정보력이 의심되는 한편 얼마나 상상도 못할 기막힌 일이었는지가 동시에 드러난다.

영화적 트릭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히 긴박하고 절박하다. 현실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울리는 것은 핸드 헬드 기법. 항공 관제소와 항공기 내부의 분주한 일상이 시종 흔들리는 화면에 담겨나온다. 잦은 클로즈 업과 인물들 간의 짧은 일상적 대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실제 사건 당사자들의 영화 출연이다. 당시 연방항공국 국장을 역임한 벤 슬라이니 등이 실제로 출연, 되돌리고 싶지 않을 9ㆍ11 사태를 재현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본 슈프리머시"를 통해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 감독의 솜씨는 영화의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긴 워밍업에 관객이 지루해할 무렵 발휘된다. 방심하던 차 순식간에 뒤집어진 상황은 재난 영화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화라는 점은 감상의 쾌감 이후 긴 여운을 남긴다. 일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절대 주지 못하는 여운 말이다.

9월8일 개봉, 15세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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