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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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사이에서
  • 윤종원
  • 승인 2006.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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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신과 인간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 무당은 자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다큐멘터리 필름 "사이에서"(감독 이창재, 제작 다큐코리아)는 5천 년 동안 종교적 제사장으로서, 예언자로서, 삶의 조언자로서 민간인의 삶과 꾸준히 관계를 맺어온 무당이라는 존재를 6개월 동안 담았다.
여전히 많은 서민에게 무당은 가까운 존재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할 때, 병원에 가도 낫지 않는 병이 생길 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찾아가게 된다. 생활과 아주 밀접하기도 하다. 1년 운수를 점치고 결혼은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직장은 옮겨도 되는지 등등 인생 상담과 함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람들은 신이 내렸다는 무당을 찾는다.

"사이에서"는 그런 무당의 숙명을 담았다. 그렇게 가까이 느끼면서도 결코 자신만은 원하지 않는 길. "무당의 자식"이라면 덮어놓고 뭔가 다를 것이라고 여겨 꺼리는 현실.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굴레가 된 삶을 살아가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주인공은 대무(大巫) 이해경. 이창재 감독이 3개월 동안 60여 명의 무당을 만난 뒤 이해경 씨를 선택했다. 여러 방송사 등에서 출연을 제의받았지만 "그저 상업적으로만 기획해 거절해왔다"는 이해경 씨는 이 감독에게 한 달 동안 지켜보기를 요구했고,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라면"이라는 전제하에 촬영을 승낙했다.

그는 "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너무 오래돼 뭐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닌 것을 두고 맞다고 말하는 현실인 데다 무당 자신도 뭐가 뭔지 몰라 고통이 생긴다"며 "처음엔 외국에만 소개된다고 해 외국에 문화적으로 알리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 촬영에 응했다"고 말했다.

내림굿을 해주는 대무인 그가 생각하는 무당의 역할은 "삶의 조언자"라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들어가 어떤 누구를 만나든 동화할 수 있어야 하며, 방향 제시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

이 감독은 "시카고에 있을 때 외국인들이 굿에 관심을 보였다. 무속신앙에 대해 아직 믿지는 않지만 5천 년 동안 사회가 변했음에도 유지돼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며 이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 합의가 있다고 봐 이에 대한 접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이해경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신의 부름을 느끼는 순간, 신내림을 받아 접신하는 과정 등을 생생히 담는다.

대무 이해경에게 28살의 인희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인희는 어느 날 사업이 망하고 자꾸 몸이 아프고, 집안에도 안 좋은 일이 생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른 사람들의 앞날이 보이기도 하는 인희는 신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거부한다.

이해경은 두려움에 떠는 인희를 옆에 두고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이해경을 찾아온 또 한 사람은 50살의 손영희. 20살 때 신의 부름을 느꼈지만 가족의 반대로 지금까지 신내림을 거부해왔던 그는 암을 비롯한 무병을 앓고, 형제간에도 의가 끊기며 집안도 점점 몰락해가자 결국 신내림을 받아들인다.

내림을 받는 자리에서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은 외삼촌, 홍역을 앓고 죽은 영혼 등 조상의 영혼이 들어와 그들의 목소리로 한을 풀어놓는다.

8살 동빈이. 어느 날 집안 정원에 있는 나무 옆에서 천왕신과 그의 아들 모습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선생님 앞에서 귀신이 장난을 치고, 친구들 뒤에 서 있으면서 동빈이를 놀린다.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게 된 동빈이는 아침 저녁으로 산신을 모시는 기도를 한다.

이해경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동빈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무당이 되는 것을 미뤄 달라는 누름굿을 해주며 "나도 이럴 때는 무당이 된 게 너무 싫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어 교통사고로 죽은 재일교포 남성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오귀굿이 등장한다. 이해경의 몸에 들어온 이 남자의 영혼은 아버지에게 "울지 않으려 했는데, 아버지에게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네"라며 섧게 흐느낀다.

영화의 정점은 인희가 내림굿을 받는 장면. 결국 인희는 내림굿을 받기로 한다. 사실 인희의 어머니에게 신이 내렸지만 인희의 어머니는 끝내 이를 거부했고 당시 무당들에게 "네가 안 되면 네 자식이 무당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희 어머니는 딸을 무당이 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를 지켜본다.

인희에게 들어온 신이 누구인지 밝혀지고, 신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접신의 순간, 인희가 가져야 할 신명을 받드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두에 올라 완전히 신내림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진다.

또한 그 사이사이 무당의 서러움, 다양한 굿의 종류가 소개된다. 교통사고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 육신이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갈기갈기 찢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굿은 보는 이에 따라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이를 가감없이 보여준 데 대해 이 감독은 "모든 종교가 갖고 있는 원시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승-전-결의 구도를 갖춘 극영화와 다름없다. 관객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무당의 삶을 안쓰럽게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무당에 대한 세속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CGV가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해 4곳의 인디관과 용산CGV 등 5개 관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9월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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